내년에는 또 내년을 찾을 테니
2년 하고도 몇 개월 전에 피아노를 구매를 했었다. 피아노를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구매를 했었지만 당시만 잠시 치다가 지금은 시우의 놀이방 한 구석에 놓여 있다. 바쁘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시간이 없다는 여러 가지 변명을 하면서 애써 모른 채 한 것이다. 아들이 태어나면서 바쁘기도 했지만 피아노를 치지 않아도 된다는 합법적인 이유가 된 것이다. 쌩 초보임에도 불구하고 무리를 해가며 야마하 전자피아노를 구매했고 그 녀석은 기약 없이 내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어렸을 적에 피아노가 배우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말씀드렸지만, 어머니는 나를 수학학원에 보냈다. 주산을 함께 가르치는 암산 학원이었고 그 덕인지 정규과정의 수학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만약 부모님이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해 주셨다면 내 삶은 어땠을까? 끈기가 없는 나는 금방 싫증을 내고 관뒀을까? 이유야 어쨌든 피아노는 내 삶에서 그렇게 사라지는가 했다.
싸이월드의 이루마의 곡은 내 홈피의 메인곡이었다. 결핍인지 관심인지 우연인지는 모르겠다. 주변에는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서울에 살면서 좋았던 점은 연주회를 원 없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도 입구의 화면으로 공연을 볼 수 있었고 웅장하진 않더라도 오케스트라의 울림도 간접경험 할 수 있었다. 몇 번 오다 보니 비어있는 객석 어딘가에서 보라며 들여보내준 분도 있었고 나처럼 티브이 화면을 입구 앞에서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공연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지만, 그때처럼 맹목적으로 보진 못할 거다. 그냥 좋아서 할 수 있었던 20살의 나.
어젯밤에 아들을 재운뒤 피아노를 쳤다. 2년 만에 그곳에 앉아서 피아노를 쳤다. 뚝딱뚝딱 악보를 보고 기초를 하는 게 전부였지만 얼마나 재밌었는지 모른다. 토리는 내가 제대로 쳤을 때는 머리로 박치기(해드번팅)를 해주었다. 이상하게 치면 피아노 건반을 밟고 지나가기도 했다. 양손으로 건반을 두드리며 음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좋았다.
아들을 재우고 방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는데 autumn leaves를 재즈 피아노로 치는 영상을 보았다. 개인 바에서 피아노를 치는 나를 투영해 보았다. 내년에는 피아노를 치고 배워야지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잠이 깼다.
‘그냥 지금 치면 안 되나? 내년에는 또 내년을 찾을 테니까. 나는 지금 밖에 없으니까.’
밤 12시에 피아노를 친 것이다. 디지털피아노의 음량을 줄이고 혼자서 시우의 놀이방에서 피아노랑 시간을 보냈다. 재미도 있었지만, 미루지 않고 벌떡 일어나 피아노 앞에 앉은 나에게 고마웠다. 덕분에 오늘은 기분이 좋다. 그동안 외로웠을 피아노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