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이비드 Nov 05. 2023

이 아파트는 남자들만 쓰레기를 버리나 보네요

유머가 주는 힘

 쓰레기가 가득 찬 봉투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맡겼다. 우리 집은 25층이다. 29층의 아파트에서 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덕분에 올라갈 때는 같이 올라가도 내릴 때는 보통 나 혼자만 남는다. 그리고 내려갈 때도 제일 먼저 타게 된다. 쓰레기를 버리러 내려가는 길에 17층에서 어떤 남자가 탔다. 나처럼 20리터 쓰레기봉투를 들고 다른 손에는 전자 담배를 쥔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크게 아는 체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가 내려가길 기다린다. 닫힘 버튼을 눌려도 엘리베이터의 문이 바로 닫히진 않는다. 그 찰나의 침묵과 어색함은 참기 힘들다.


 그리고 5층에서 50대 중반의 남성이 탔다. 그 남성도 20리터 쓰레기봉투를 들고 탔다. 남자 셋은 같은 목적지를 향했고 서로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내심 불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침묵을 뚫고 5층 남자분이 포문을 열었다.


[이 아파트는 남자들만 쓰레기를 버리나 보네요.]


 사소한 한마디가 나를 무장해제 시켰다. 같이 웃으면서 그렇다며 맞장구를 쳤다. 17층의 남자는 별말하지 않았지만 얼굴이 많이 풀어진 것처럼 보였다. 유머를 곁들인 말 한마디가 어색함을 걷어내고 즐겁게 만드는 것이다. 동일한 순간이 오면 나도 꼭 써먹을 거라 다짐하고 메모장에 적어 놓았다. 말 한마디에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지 원. 소소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을 정도의 유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출근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누군가가 나에게 mbti를 물었다.


[선생님 mbti 어떻게 돼요? isfp 맞죠?]


[저 정상입니다.]


 상대가 내 대답을 듣고 빵 터졌다. 사소하고 유치한 답변이긴 했지만 상대가 웃어주니 기분이 좋다. 사실 RH+라는 답변과 고민을 하다가 나온 답이었고 예상에 걸맞게 분위기는 좋았다. 평소에도 농담을 하는 편이지만 더 자주 하기로 마음먹었다. 유머가 주는 힘을 다시금 느낀다. 덕분에 하루가 즐거워졌으니까.


매순간 즐거운 아들 처럼


P.S - 참고로 내 MBTI는 ENTJ다. 어느 것 하나 맞히지 못한 선생님의 안목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찍어도 그렇게는 하기 힘든데, 그 선생님의 눈치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피아노를 치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