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일기를 누가 사서 볼까?
브런치에 쓰는 글은 일기 같다. 매일 쓰다가 한동안 쓰지 않다 보니 죄책감도 들고 심심해서 그냥 한 줄 끄적인 일기.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은 선생님께 검사를 받는 일기와 같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일 때 일기상을 받은 적이 있다. 일기상은 도대체 무엇을 평가하는 걸까? 속에 있는 마음을 전부 털어냈다면 매타작만 받다 끝났을 텐데. 일기를 쓰지 않고 밀려서 지난날의 날씨를 알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겁 많던 어린아이가 어른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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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의 방학숙제를 꼼꼼하게 보지도 않았을뿐더러 일기 상단에 적힌 날씨는 크게 관심도 없었더랬다. 하지만 숙제를 밀린 어린아이는 무서웠다. 이 죄의식을 심어주는 학교 시스템도 문제긴 하지만, 초자아를 성장케 한 사회의 분위기도 문제가 되긴 한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기엔 내 앞가림도 못하는 어린이였으니까. 선생님이 무섭고 학교가 무서웠던 나는 억지로 빈칸을 채워 넣었다. 당시 사회의 분위기는 주어진 업무(과제)를 반드시 해야 했고 나는 그런 시스템 속에서 커왔다.
브런치는 나에게 주어진 과제고 업무였다. 스스로가 주는 숙제였다. 5년 동안하고 있는 게으른 숙제. 이걸로 무얼 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도움은 되지 못하더라도 공감은 되지 않았을까? 통계를 들여다보니 남들처럼 좋아요를 많이 받거나 조회수가 높지도 않았다. 호응도, 댓글도 없지만 시간이 지나고 쌓이다 보니 조회수가 늘고 있었다 파급력 있는 글을 쓰진 못했지만 꾸준하게 쓰다 보니 100만의 숫자가 다가온 것이다. 380여 개의 글 중에 하나라도 힘이 되고 도움이 되었길. 내가 바라는 건 세상을 바꾸는 문장이 아니다. 지금을 긍정하는 것이다.
POD출판이라고 해서 부크크에서 책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내가 쓴 글들 중 백여 개를 추려서 책을 만들면 얼추 한 권의 책은 나올 것이다. 소량 생산에 출판사가 아닌 개인 출판이 가깝지만 내가 쓴 글을 책으로 볼 생각 하니 기분이 묘하다. 내가 쓴 일기를 누가 사서 볼까? 안네는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쓰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감동을 주었지만 내 글엔 그런 솔직함보단 세상을 비라보는 어긋난 시선이 있을 뿐이다. 책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은 좋을 것이기에 그동안 썼던 매거진의 글들을 담고 고쳐 나가야지. 과거에 쓴 일기를 보는 건 낯 뜨거운 일이지만, 내가 겪었던 감정의 온도는 지금보다 뜨겁구나.
P.S - 일간지에 멋들어진 칼럼을 쓰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고 나에게도 기회가 올 거라 믿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