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가 빌려준 MP3에서 처음 듣게 된 노래다. 2001년에 발매된 하림의 1집에 수록된 곡으로 내 싸이월드의 배경음악이었다. 싸이월드의 배경음악 중에선 이루마의 love me와 난치병을 가장 많이 틀었다. 이 노래는 내 18번이었다. 이승기의 삭제랑 더불어 가장 많이 부른 노래. 친구들도, 동아리 형들도 이 노래는 부르지 않았다. 내가 부를 것을 알고 먼저 선곡해주기도 했다. 반복해서 듣고 부르다 보니 다른 노래보다 잘 부르게 된다. 잘 어울린다는 게 맞는 표현이겠지?
난치병
이제 알 것 같아요
나는 미쳐버린걸
나을 수 없는 흔치 않은 병처럼
그대라는 뜨거운 열은 식지 않고
몰라 모를 수밖에
나만이 앓고 있는
지독히 깊은 그대라는 상처가
얼마만큼 참아내기 힘든지
한잔 술이 밤을 마취할 뿐
내 온몸에 너무 퍼져버린 추억은
이젠 손 쓸 수가 없어서
그냥 떠오르게 놔두죠
너무 아파도
소리 한번 안 지르는 건
나 그렇게 나을 수 없기 때문에
단 하나 기도하는 건
돌아온 그대이기에
그 아무도 그대 떠나간 걸 몰라요
알리고 싶지 않았어요
왠지 돌아올 것 같아서
돌아와
그냥 오랜만인 척해요
나 이래야 나을 수 있기 때문에
단 하나 기도하는 나의 꿈은
그대 어느 날 문득
내가 눈을 떴을 때
숨 쉬는 아침
눈이 부실수 있게
커튼을 젖히며
날 바라보는 그대
가사가 예쁘다. 솔직하고 단순하다. 제목도 독특하다. 간호사가 되고 나서는 희귀 난치질환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녀가 돌아와야만 나을 수 있는 병이라니. 이렇게 찌질한 이별을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을까? 윤종신은 이런 대단한 곡을 어떻게 작사했을까? 사실 그가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한 가수인지는 모르겠지만, 난치병이라는 곡 하나로도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연애의 경험이 없는 남고딩의 머리와 가슴속에도 그녀가 떠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했으니. 철없는 20살에는 이 노래에 빠져 살았다. 아이리버 mp3 유선이어폰에선 하림이 출국이라는 노래와 난치병이라는 노래를 번갈아 가며 나에게 불러주었다. 지금도 아이폰의 블루투스 무선 이어폰에선 더 좋은 음질로 노래가 흘러나오지만, 그때 느끼던 그 애틋한 감성은 없다.
20년을 지나도 여전히 노래는 맛있다. 목소리를 깔고 부르기도 하고 톤을 바꿔서 부르기도 해 본다. 그냥 읊조리듯이 내 목소리로 불러 보기도 한다. 감정의 과잉보다는, 가사 하나하나를 씹어보며 불러본다.
p.s - 너무 아파도, 소리 한번 안 지르는 건 나 그렇게 나을 수 없기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