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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비드 Jun 20. 2021

일하면서 눈물을 흘린 적 있나요?

 호흡기 내과 메인 병동에서 첫 이브닝 근무를 할 때다. 난 신규 간호사였고 10명의 환자를 보는데 허덕이고 있었다. 5인실 방 두 개에다가 2인실 방 하나까지 총 12명을 보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시니어 선생님이 대신 2인실 방을 봐준다고 해서 10명만 보았다. 이브닝 근무는 2시부터 10시까지 였지만 한 시간 전에 와서 준비를 하고 퇴근 후에도 업무는 마무리되지 않으면 끝까지 하고 가야 했기에 병원에 있는 시간은 짧아도 10시간 이상이었다. 이브닝 업무는 입원환자를 받고 환자 파악을 하고 다음날 검사와 시술을 준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당시엔 업무에 대한 이해도도 없었고, 무엇을 중요하게 봐야 하며 파악해야 할 정보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때의 업무량은 지금 생각해도 충분히 많았지만 시간 배분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더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연차가 쌓이고 어느 정도 일이 조금씩 손에 잡히게 된 지금도 그날의 업무량을 들여다보니 손에 땀이 난다. 지금 해도 쉽게 처리할 수 없는 일들이 하루 만에 일어난 거니까. 이날은 입원과 전실이 5명이나 진행되는 날이어선지 첫 이브닝부터 버벅거리고 있었다. 타병동에서 전원을 오는 폐렴 환자는 산소 적용을 6L를 하고 있었다. Spo2는 90 남짓이었고 언제 기도 삽관을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결국 전실 오자마자 부분재호흡마스크를 하게 되었고 환자 파악은커녕 환자의 상태를 noti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2인실에 5인실로 전실 온 환자는 처음 V/S 체크 때 60/40이 체크되었다. 부랴부랴 또 norpin을 달고 infusion pump (약물 주입기)를 달고 혈관주사를 겨우 새로 잡아서 약물을 주입했다. 이렇게 이벤트도 많고 할 일도 많았는데 환자마다 당뇨 체크를 해야 했고, I&O(섭취량과 배설량)을 체크해야 하는 환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내일 기관지 내시경이 예정되어 있는 환자는 복용하고 있는 약이 12개였다. 절묘하게 복약지도문과 먹는 약에 대한 정보를 들고 오지 않았단다. 바빠죽겠는데 일일이 약을 파악해야 하는 압박감이 찾아왔다. 옆에 선생님들이 액팅 업무를 도와주고 일들을 도와줬지만 한번 터진 일들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환자와 보호자분들은 다음날 식이에 대해 끊임없이 물으러 나왔고 여러 번의 식사 변경을 원했다. 산소 수치가 떨어지고 혈압이 떨어져 버린 환자 두 명을 케어하느라 다른 업무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환자 파악과 오더 변경을 제대로 확인할 틈도 없었다. 라운딩을 갔다 오면 투여 약물들이 싹 갈려(?) 있어서 약 카드를 새로 만들고 기존에 투여 예정이던 약물을 반납해야 했지만 그 일은 시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새로 처방한 약물 투여를 지금 해달라는 전화가 핸드폰으로 계속 울려왔다. V/S을 한 시간마다 측정 해달라는 1년 차 전공의는 환자를 보러 오지도 않고 스테로이드 용량 변경을 구두 오더로 하고 있었다. 나에게 인계를 받을 예정이었던 최정은 선생님은 나이트 근무시간보다 1시간을 일찍 오셔서 인계받을 환자의 history를 파악하고 인계받을 emr sheet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 선생님이 미리 온 것조차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일하고 있었기에 입원 환자를 파악하고 다음날 일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이트 번 근무자들이 하나둘씩 오고 인계를 줄 때 나 또한 인계를 주기 위해 앉았다. 인계 준비는커녕, 주어진 액팅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상태였고 기도 삽관을 준비해야 할 환자와 중심정맥관을 넣어야 하는 환자가 대기 중이었다.


 선생님과 함께 앉아서 인계를 주려는데 눈물이 나왔다.


 내가 병원에서 딱 한 번 울었는데 바로 그날이었다. 인계를 주는 사람은 나였지만 그 선생님이 만들어 놓은 인계장으로 인계를 준 것이다. 인계를 줘야 하는 사람이 오히려 인계를 받아야 할 사람이 준비한 인계장으로 그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꼴이라니. 선생님은 내가 이브닝 첫날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오늘 이벤트도 많다는 것을 다른 이브닝 번 선생님에게 연락을 받아 미리 와서 준비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인계에 대해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산소 수치가 떨어진 환자와 혈압이 떨어진 환자에 대해서 묻는 것이 다였다. 그리고 너무 수고했고 남은 업무는 내가 정리할 테니까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다며 다독여 주었다. 자신조차도 이런 날은 시간 내에 다 해결할 수 없다는 따뜻한 조언을 준 건데, 인계중에 나오는 눈물은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미안한 감정이 가장 컸고, 한 사람의 간호사의 몫을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들었다. 그날 내가 했던 행동은 다음 근무자와 환자에게도 민폐 그 자체였고 무능력한 모습으로 모든 사람이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환자 정리와 파악, 다음날 업무에 대한 준비는 벌써 선생님이 해놓았기에 내가 한 일이라곤 이브닝 때 있었던 이벤트에 대한 차팅과 액팅 입력이었고, 그것을 다 끝냈을 때에는 투여 약물 정리와 약물 반환도 선생님이 마무리한 상태였다. 그날 내가 어떻게 인계를 줬었는지 기억나지 않아도 퇴근할 때 느꼈던 신촌의 불야성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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