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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비드 Jul 12. 2021

진상 환자

 간호사 친구들과 카톡을 할 때나 만나서 수다를 떨면 병원에서 쓰는 의학용어를 편하게 쓰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병원 밖에서는 일어나진 않지만 안에서는 동일하게 일어날 일들을 공감하며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간호사들은 동종업계 종사자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편하다. 나도 간호사 동생이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즐겨 하는 편인데, 병원이 아닌 다른 필드에 있는 친구들에게 동일한 일을 설명하고 공감케 하고자 하려면 앞뒤 전후 사정을 설명해 줘야 한다. 간호사는 내가 말하는 도입부부터 공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내가 하는 대화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직업이 그 사람 자체를 규정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꽤 오랜 시간 동종업계에 있으면서 그들의 문화가 몸에 배게 된다. 간호사는 간호사를 알아본다고, 특유의 느낌과 말투가 있고 표정과 행동에서 유추할 수 있다. 수면시간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병원에서 동일한 환경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환자와 보호자와 부딪치는 일도 많고 다른 직종의 근무자들과도 마찰이 있을 수 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고 아픈 사람들과 나이 많은 사람들을 직접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고충은 비슷하다.


 특히 일당백을 하는 진상 환자는 주 대화 레퍼토리가 된다. 환자와 보호자는 같은 핏줄에서 나고 자란 것을 확인이라도 해주듯, 무개념인 행동을 하는 것은 자식과 부모가 동일하다. 다인실에 입원해 있으면서 큰 목소리로 떠들고 냄새나는 음식을 가져와서 미간을 찌푸리게 한다. 왜 빨리 안 낫느냐고 소리 지르는 사람, 시술한 당일 퇴원을 시켜달라는 사람도 있고 침상에서 안전을 취해야 한다고 이야기해도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 출혈이 다시 생기는 사람, 다음날 검사를 위해 금식을 해야 한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식사를 하는 사람까지.


 보호자 없는 병동이야 간호사들이 알아서 한다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선 환자와 보호자, 보호자분들끼리도 갈등은 많다. 그 좁은 공간에서 5인실 총 10명이 지내려면 갈등이 안 생기는 게 이상할 정도지만 대부분 서로 양보하면서 지낸다. 통계상 p 값이 충족되지 않지만 내 임의로 통계를 내본다면 연령대는 50~60대가 진상 비율이 높다. 상대적으로 여성 환자가 더 진상이 많고 오히려 70대 이상의 경우 협조가 더 잘 되고 큰 잡음 없이 퇴원하는 편이다. NP과 치료를 받는 사람들에겐 애초에 꼬투리를 잡히지 않게 조심하지만 내 맘대로 되는 건 없다. 1년 차 전공의가 환자가 했던 말을 그대로 나에게 전하면서 그게 사실이냐고 되물은 적이 있었다. 식후 약도 주지 않고 밥도 늦게 준다는 거짓과 과장을 섞은 이야기였는데 곧이곧대로 믿은 것이다. 사실 놀랍지도 않았고 몇 번 겪다 보니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편집증이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으며, 그 환자와 보호자에게 병원 주의사항을 설명해 주면서 느꼈던 싸한 기분은 역시나 들어맞았다.


 <선생님. 약물 투여 시간은 라운딩 시간과 동일하고요. 만약 투약을 빠트렸다면 제가 경위서를 써야 할 문제겠지만, 환자에게 식후 약물을 투여하는 것을 병동 환자분들이 다 보셨습니다.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면서 큰소리를 냈으니까요. 그리고 식사 시간은 정해진 시간에 순차적으로 식당에서 주는 거고요. 혹시 이분 NP인 건 아시죠?>


 그 전공의도 결국 교수 회진 때 뒤통수를 맞았다. 본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고 마음대로 처방을 내린다며 교수에게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환자를 보며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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