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귀엽다. 우리의 유전자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진 건지, 학습된 고정관념으로 귀엽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기는 귀엽다.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다 보면 엄마 손을 잡고 걷는 아이들과 유모차를 타고 다니는 아기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외모의 차이가 있고 잘생김과 못생김은 몸소 느낄 수 있지만, 외모와는 상관없이 각각의 아기들은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이 있다. 몸에 비해서 큰 눈과 동그란 얼굴, 작은 코와 꽉 쥔 주먹과 같은 외향적인 특징들은 생존을 위해 귀엽도록 진화했다는 과학자들의 의견이 있었다. 만화 캐릭터들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유는 아기처럼 큰 얼굴에 작은 몸, 짧은 팔다리에 귀여운 목소리를 가져서이다. 아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귀여움을 느끼고 사랑스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무언가가 언짢은 아들
가정을 꾸리고 기쁨이가 우리 가족으로 함께 하게 된 이후부터 주변의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출산 전에는 아기들과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가? 아파트 단지 곳곳에 아이들이 있다. 결혼 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듯한 유모차들이 하루에도 몇 번은 내 눈앞을 지나가고 있고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아파트 정문에서부터 들리기 시작한다. 내가 직접 가장이 되고 아이의 아버지가 돼서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결혼 전에는 아기를 애틋하게 볼일도 없었고 보더라도 감정적인 쏠림은 없었다. 아빠가 된 지금은 어떨까? 특히 우리 아들을 보고 있으면 여태껏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 솟는다. 아기가 태어나면 세상이 달라진다고 이야기하던 친구들의 말이 불현듯 떠오르면서 세상을 향해 조금씩 눈을 떠가는 기쁨이가 사랑스럽다.
내가 만약 결혼을 하지 않고 육아를 하지 않았다면 어떤 모습일까? 게임을 하거나 책을 보고 기타를 연주하며 퇴근 후 시간을 보냈을거다. 약속을 만들고 누군가와 시간을 함께하기도 했겠지만, 혼자서 노는 것을 즐겼기 때문에 코로나 시국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을거다. 결혼을 하고 아들이 태어나고 가장이 된 지금의 모습은 혼자 지낼 때 완 사뭇 다다르다.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고 기쁨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아파트를 한 바퀴 돌고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킨다. 그다음 목욕을 시킨 후에 꼼꼼하게 연고와 크림을 발라주고 혹여나 먼지가 들어가지 않게 코와 눈의 이물질을 제거하고 재울 준비를 한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온전히 나를 위한 삶에서 타인을 위한 삶으로 바뀐 것이다. 타인이라고 표현하기엔 1촌 관계인 아들과 촌수를 따질 수 없는 아내와 함께 생활하고 있으므로 타인이 아닌 우리를 위한 삶이라고 표현하자. 0촌(?)인 아내는 육아의 대부분을 전담하고 있고 고생하고 있으며 나보다 더 가족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 무언가를 위해 희생한다는 표현을 좋아하진 않지만 아내는 전적으로 자신의 삶을 희생하여 기쁨이와 토리와 나까지 세 남정네들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부모님이라는 1촌에 다가 아들이라는 새로운 1촌이 추가되었다. 그 촌수를 뛰어넘는 0촌의 아내는 나에게 무한한 책임과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결혼 전과 후를 생각하며 좋고 나쁨을 평가할 순 없다. 만약이란 건 존재하지도 않으며 더 나쁜 과거와 더 나은 미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을 벗어나기보단 즐기고 누릴 생각을 해야 한다. 지금 눈앞에 있는 아들의 기저귀를 치우고 토리의 화장실을 치워주며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한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시간이란 건 본인의 생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누군가를 위한 삶은 나쁘지 않다.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다른 이들을 구하기 위해 투쟁하는 거'라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구절처럼 구원을 받기 위해선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부모님이 그러했고, 조부모님이 그러 했을 거다. 장인 장모님은 애지중지 아내를 키우고 길렀으며 할머니가 된 이후엔 기쁨이에게 다시 지난날의 애정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