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과 <봄봄>은 지은이도 같고 소설 속 여주인공의 이름도 '점순이'로 같아서 늘 헷갈리곤 했다.이쯤 되면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의 제목이 틀렸다는 것을. <동백꽃 필 무렵>은 어릴 적 읽었던 그 소설이 아니다. 드라마 제목이다.
어느 신문 사설에서 버젓이 김유정의 <동백꽃 필 무렵>이라고 인용한 것을 본 적도 있다.'닮은 살걀'처럼 속기 십상이다.
<동백꽃>은사춘기 소년 소녀의 미묘한 신경전이 불장난처럼 재미있게 타오르는 이야기다. 왈가닥 '점순이'는 순진한 '나'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마름집 딸이다. 시비는 실은 관심의 표현이다. '나'의 닭이 점순이 닭에 거듭 패하자 열 받은 '나'는 급기야 ' 점순이 닭을 죽여버린다. 당황해서 맨탈이 무너진 '나'와 점순이가 동백꽃 속으로 쓰러지며극적인 화해를 이룬다. 지금 와서 보면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가 닭의 죽음이 아니라 결말인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씬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또 한 번의 반전이 있다.
"아빠, <동백꽃>의 동백꽃이 동백꽃이 아니라 생강꽃이래"
중2가 된 딸이 교과서에 실린 <동백꽃>을 읽고 선생님께 들은 얘기라며 재잘댄다. 옛날 강원도에서는 동백기름을 구하기 어려워, 흔한 생강나무에서 유사한 기름을 뽑아 썼는데 이때부터 생강나무를 동박나무라고 불렀단다. 동박나무의 동박꽃이 소설의 동백꽃이 된 것이다.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동백(까멜리아)이라면 점순이는 동박(생강꽃)이다. 둘은 생김새도 색깔도 완전 딴판이다.여기서 또 한번의 반전! 생강나무엔 생강이 열리지 않는다.(생강냄새가 난다고 해서 생강나무다.)
나 때 아니 '라떼'는 손으로 쓰며 공부했는데, 딸은 엄마 아빠를 '들어주는 로봇 연습장'으로 활용한다. "그래?" "진짜?" 무지한 아빠의 리엑션이 곁들여져야 흥이 나고 암기도 잘되는 모양이다. 덕분에 30년도 더 지난 중등 교육과정을 착실히 복습하고 있다. 딸의 연습장이 되는 것은 때때로 몹시 지루하지만 무료한 일상의 오아시스다. 이런 걸 배웠나 싶은 것들을 재발견하기도 하고,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을 바로잡기도 한다.
"아빠 왜 남반구에선 해가 서쪽에서 뜰까?"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것도 북반구에서만 통하는 반쪽 진실이다. 남반구에선 반대라는 걸 30년 전의 나는 모르고 지나갔다.몰라도 사는 데 별 지장은 없었지만 상식 없는 사람으로 대충 살아온 것 같아 자식 앞에 괜스레 부끄러워진다.
"이것도 몰라?" 하며 자식을가르치며 핀잔주던 시대는 바야흐로 끝났다. 앞으로는 들통날 일만 남았다. 아빠의 무지와 어리석음이.중학생 교과서에 인생에 필요한 모든 지식이 들어있다는 것을 더 이상 부정할 수가 없다. 별 이유 없이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이지만, 딸의 지식에 압도되고 무시당하는 것은 기분이 썩 괜찮다. 그래서 '딸바보'라고 하나보다.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내음새에 나는 땅이 꺼지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동백꽃, 김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