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폭 관련 뉴스가 자주 나와서 잘 모르던 연예인, 운동선수를 하나하나 알아가는 중이다. 나와는 세대차이가 좀 나지만 대충 어떤 모양의 폭력이었을지 머릿속에 그려진다. 내가 경험한(아니 목격한) 가장 절정의 학교폭력은 딱 30년 전 즈음이었다. "아버지 머하시노?"하며 몽둥이와 손발을 두루두루 사용해 신체 이곳저곳을 가리지 않고 신나게 두들겨 패시던 선생님. 학급 '통'과 그의 똘마니들이 '후까시'를 잡으며 교실에 뒷골목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던 시절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교실 한 구석에서 샌드백처럼 두드려 맞는 친구가 있었고, 다른 아이들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수다를 떨고, 엎드려 자고, 책을 읽고 있었다. 혹시라도 그게 내가 될까 봐 다들 애써 모른 척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키 큰 순으로 번호를 매길 때 학급 50명 중에 5번 뒤로 밀려난 적이 없을 정도로 작고 왜소한 체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딱 좋은 먹잇감이었을 텐데 운 좋게 '타깃'이 되진 않았다. '통'이라고 불린 일인자는 다른 반 '통'과 서열을 다툴 때에나 싸움에 나서고, 대개 같은 반 동급생에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놈들은 그 옆에 붙어 다니는 '똘마니'들이었다.
그러던 중 그 똘마니 중 한 명의 심기를 거스르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수업시간에 뭔가를 보여달라고 했는데, 그의 눈엔 내가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소리는 안 들렸지만 '너는 뒈졌어'하는 입모양이 또렸했다. 쉬는 시간이 오기 전까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구석에서 얻어터지던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 울리고, 그 녀석이 내 자리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게 느껴졌을 때,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녀석을 향해 평생 한 번도 입에 담지 않았던 욕설을 퍼부으며 먼저 멱살을 잡았다. 이내 둘이 엉겨 붙어 치고받고,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상대의 덩치가 한참 컸지만 죽자살자 딱 들러붙으니 녀석의 주먹은 내 딱딱한 머리만 쥐어박을 뿐 이렇다 할 한방을 먹이진 못했다. 물론 나는 제대로 한 대도 때리지 못했다. 친구들이 말리며 억지로 둘을 떨어뜨려 놓았다. 떨어지면서도 나는 있는 욕 없는 욕을 방언처럼 고래고래 쏟아냈다. 싸움은 누가 봐도 그 녀석의 판정승이지만, 나는 샌드백처럼 얻어터지지 않았다. 그것은 폭행이 아니라 엄연한 전투였다. 다시 마지막 수업이 시작되었고, 종이 칠 때까지 나는 몹시 불안했다. 방과 후 재개될 본격적인 전투가 두려웠다. '녀석이 이를 갈고 있을 텐데..' 드디어 종이 치고, 난 다시 전투준비를 했다. 틀림없이 녀석이 다가오리라 생각했다. 아마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웬일? 녀석이 가방을 챙겨서 교실을 나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 일은 그렇게 싱겁게 끝났다. 녀석의 입장에선 조용히 공부만 하던 샌님이 사납게 욕을 퍼부어대며 반격해오자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샌드백처럼 두들겨 패진 못했지만 어쨌든 한차례의 전투에서 승리했으니 그걸로 마침표를 찍기로 한 모양이었다. 괜히 더 들쑤셔봤자 재미없을 놈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이 얘기를 이리 길게 쓰려던 건 아닌데 쓰다 보니 소설 같은 무용담이 되고 말았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가 찾아오자 자꾸 신경이 쓰인다. 가뜩이나 학폭으로 나라가 떠들썩하니 더욱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둘째가 갑자기 말수가 줄고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것이 사춘기 현상인지, 아니면 혹여 학폭이라도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현실과 영화에서 늘 보아오던 것이 우리 아이한테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너희는 학폭 괜찮아? 문제없어?"
TV에서 학폭 얘기가 나올 때마다 옆에 있는 딸과 아들에게 농담처럼 넌지시 찔러본다.
"아빠, 영화를 너무 많이 본거 아냐?"
어이없다는 표정과 함께 돌아오는 대답이다. 그 터무니없다며 찡그리는 인상이 도리어 나를 안도하게 만든다. 무뚝뚝하게 아니라고 했다면 뭔가 숨기는가 싶어 걱정을 내려놓지 못했을 것이다.
"혹시 그런 일 있으면 아빠한테 전부 다 얘기해. 아빠가 다 해결할 수 있어"
새겨듣지 않을 줄 알면서 굳이 덧붙인다. 혹시라도 정말 일이 생기면 즉각 아빠가 생각날 수 있게 기회가 될 때마다 예방주사를 놓아주는 것이다.
최근 학폭 폭로와 고발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과거에 합당한 처벌을 받고 넘어갔어야 했다. 잘못이 있었을 당시에 그 일이 드러나고 처벌되고 진정한 사과로 마무리되는 것이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바람직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지 못하고 넘어간 폭력은 철든 한량들의 소싯적 추억으로 미화되기까지 한다. 그런 면에서 <바람>이라는 영화가 나는 불편했다. 철든 한량의 시점으로 촬영된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너무 높아서 더욱 그랬다. 무심코 던진 돌에 맞은 개구리의 시점은 완전히 달랐을 텐데. 교사나 군대 선임의 폭력도 비난받아야 할 대상이지만, 같은 나이의 동급생끼리 '전투'가 아닌 일방적인 폭행은 비교할 수 없을 만치 무자비하고 굴욕적인 인격 말살 행위다.
주종관계를 설정하고 약자를 일방적 지속적으로 가학 하는 것은 '친구끼리 다툴 수도 있지'의 문제가 아니다.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엄정한 처벌을 해야 한다. 이것은 당하는 아이가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가, 사회, 학교의 몫이다. 재미 삼아 저지른 폭력이 처벌받지 않고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한 처벌과 사과를 담보하는 학교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당시 해소하지 못하고 넘어갔으니 피해자도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하고, 가해자 역시 일이십 년이 지나서 호된 부메랑을 맞게 되는 것이다.(물론 부메랑을 안 맞는 폭력이 훨씬 더 많겠지만) 학부모가 된 지금, 내 아이들의 학교는 건강한지 묻고 싶다. 많은 것이 달라지고 좋아졌지만 아직도 교묘한 괴롭힘들이 무심코 빠져나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주저 없이 얘기한다. 공부, 사랑, 우정, 진학, 취업.. 이런 것들은 네가 풀어야 할 숙제지만 '폭력'에 대한 응징만큼은 아빠 찬스를 꼭 쓰라고.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에 맞서는 방법을 손수 보여주겠노라고. No mercy for viol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