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전화

전화받기 싫은 이유

by 그랑바쌈

평온한 주말 오후 아내의 폰이 울렸다.

"저기 원이 어머님 되시죠?"

준영이 엄마라고 자신을 밝힌 여자는 꽤나 심각한 어조로 얘기를 시작했다.

"상황을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상황'이라는 단어 선택에 우리 부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심장이 번지점프를 한 것처럼 바닥을 찍고 다시 튕겨 올랐다.


그 상황이란 이랬다.

규빈이가 원이와 준영이에게 등짝 스매싱을 날리고 도망갔는데, 원이가 잡으려고 쫓아가자 규빈이가 117 학폭신고센터로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먼저 때린 규빈이도 쫓아간 원이도, 천진난만한 9살 애들의 장난일 뿐인데, 그만 학폭 신고 사건이 된 것이다. 폰이 없는 원이를 대신해 옆에 있던 준영이가 맞고소 아니 맞신고를 해줬단다. 이쯤 되면 불쌍한 건 신고센터 상담원이다. 그나마 112나 119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수화기 너머 준영 엄마는 차분하게 상황을 전했지만 그 차분함이 좀 '오버'였다. 처음부터 별거 아닌 일이고 아이들이 다치거나 한 건 아니라며 살짝 웃음기를 섞어 얘기하는 편이 나았을 게다. 타인의 전화로 자식에 관한 뜻하지 않은 소식을 접하는 부모 마음을 역지사지 했다면 말이다.


짝사랑하던 동아리 여자 후배의 연락, 과외 전단지를 붙인 뒤 걸려오는 학부모의 전화,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면접 합격 소식.. 받고 싶은 전화들로 가득했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오는 전화가 두렵다. 그나마 괜찮은 소식은 죄다 인터넷 로긴 해서 직접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고, 예기치 않게 전화로 듣게 되는 소식이 굿뉴스 일리가 없다. 준영 엄마가 전한 '상황 같지 않은 상황' 정도라면 오히려 가슴 쓸어내리며 감사할 일이다.


상상하기도 끔찍하지만, 상황은 늘 생긴다. 매일 9시 뉴스가 증거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배를 타고 가다가, 길을 걷다가, 친구랑 술을 먹다가..

그게 나는 아니었으면, 내 아이의 소식은 아니었으면 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나님께서 책망하시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며칠 전 광주 버스 사고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고등학생은 부모가 애지중지했던 늦둥이란다. 그 소식을 전화로 전해 들었을 부모 심정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


전화가 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화 한 통 없이 비싼 요금 꼬박꼬박 걷어가도 좋으니 이 작고 무서운 기계는 그냥 말없이 잠자코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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