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는 울지 않는다 4화

검은색들

by 호림

그날의 촬영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왜 그렇게 됐을까. 하나씩 곱씹어보자면 누구에게도 그 책임을 물을 수가 없었는데, 그 결과에 대해서도 콕 집어서 책임을 전가하기가 쉽지 않았다. 먼저, 바로 나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었다. 내 컨디션이 난조였다는 건 앞서 여러 차례 숨을 헐떡이며 고통을 이미 표현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까 주인이나 책임 PD가 '뛰어라'라고 할 때 뛰지 않은 건 어쩔 수가 없는 문제였다.


그들은 수차례 나에게 뛰어보라고 채근했지만, 그럴수록 내 움직임은 눈에 띄게 둔해졌다. 느리게 걷거나 수시로 주저 앉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다. 그들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도 했다가 발로 귀 뒤를 박박 긁거나 사타구니를 핥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빠트리지 않았다. 주인의 안색은 점차 푸르딩딩하게 노기를 띠기 시작했다.


"나원 참, 원래 이렇게까지 널브러져 있는 놈이 아닌데."


주인은 이런 류의 말들을 반복하면서 말끝마다 혀를 찼다. 기름진 고기가 한 점 남지 않은 접시를 보듯이 입술을 훔치며 '쯥' 소리를 냈다. 나는 그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면서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함으로써 주인이 혀를 차게 만들 수 있을지 계산을 했다. 멀쩡하던 하늘은 갑자기 비를 뿌리기 시작했고, 촬영팀은 자신들의 몸이 비에 흠뻑 젖건 신경쓰지 않으면서 서둘러 우산을 펼쳐 카메라 위에 펼치거나 카메라에 비닐을 씌우기 바빴다. 그들을 입고 있는 검은색 패딩 위로 빗물이 미끄러지며 번지르르하게 보였으며, 카메라에 덮인 비닐에 땀처럼 빗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검은색 우산을 쓰고 있는 검은색 카메라들은 일제히, 검은 눈동자로 그들을 지켜보는 한 마리의 짐승이라는 소실점을 향해 뻗어 있었다.


이번에 자제력을 잃어버린 것은 큰 심경 변화를 보이지 않던 김모나 PD쪽이었다. 그녀의 머리칼이 날카로운 피뢰침처럼 쭈뼛 서 있었다. 그 위로 낙뢰가 떨어지면 좋은 구경거리가 될 것 같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은 오후 4시반, 작열하던 태양빛은 힘을 잃어갔고 산 속이기에 어둠은 골짜기의 습기처럼 빠르게 번졌다. 검은옷을 입은 사람들 너머로 세상은 검은색으로 침잠하고 있었다. 어두운 빛은 요란한 알람 소리를 울리지 않았을 뿐 촬영을 진행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최후통첩과도 같았다. 그 점이 촬영할 때마다 생기는 돌발 상황에 이골이 난 김모나 PD의 신경을 돋웠다. 아니면, 전체 스태프들이 점심도 거른 채 강행한 촬영을 접어야하는 상황에서 참을 수 없는 공복의 허기가 그녀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태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촬영을 하긴 무리일 것 같아요. 날씨도 그렇고, 개도 그렇고, 촬영을 접읍시다."


김모나 PD는 단정적으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나머지 스태프들은 그녀의 입에서 '더 이상'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부터 돼지김치찌개를 먹으러 가자고 자기네끼리 왁자하게 떠들고 있었다. 참았던 하품을 크게 하는 사람도 보였다. 검은 먹구름처럼 보였던 그들이 점차 색깔을 입고 인간미를 갖춰가는 것처럼 보였다. 비를 맞아서 떨어진 체온으로 볼이 상기되었기 때문인지 벌써 얼큰하게 취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몇몇 보였다. 어디에서도 개에 대한 비난은 없었다. 나는 그 점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주인은 연신 '죄송하다'며 김모나 PD를 향해 고개를 숙였지만, 그녀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걸요'라는 말로 일축했다. 다음 촬영 스케줄에 대한 논의는 오고가지 않았다. 촬영팀은 처음에 등장했던 것처럼, 다시금 검은 구름이 되어 철수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모두 떠나고 난 후, 며칠쯤 지났을까. 촬영이 있었던 그날에 대한 비난은 없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주인이 이번에는 어떤 산에 나를 끌고가서 지옥훈련을 시킬지 몸서리를 치면서 쉴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더욱 더 게으름을 피웠다. 일주일가량 지났지만 주인은 어쩐 일인지 등산 계획을 잡지 않았고 인파가 번잡한 시장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의 원대한 계획대로라면 '세상에 이런 일이'에 출연한 이 개(정확하게는 개를 훈련한 자기자신)를 보고 시장 사람들이 감탄을 했어야 할 곳이었다. 생선가게 앞에 축축한 길을 걸으며 비린내를 맡으며 침을 꼴깍 삼키는 나와는 달리 주인의 비틀린 입술 사이로 '쯧'하는 소리가 흘러나올 듯 했다. 그는 내 목에 걸린 줄을 검은색 옷을 입은 사내에게 건넸다. 나는 잠시 본능적으로 반항하며 뒷걸음질을 쳤지만 우악스러운 사내의 손에 질질 이끌리고 말았다. 주인은 나를 개장수에게 팔아버린 거였다. 개장수는 모퉁이를 한번 도는가 싶더니 사철탕 집의 사장에게 나를 넘겨 버렸다. 주인의 서슬퍼런 독기를 내심 느끼고 있었지만 평소처럼 매질을 가하거나 손가락질을 하지 않아서 의아하게 여기고 있던 차에 주인은 또 다른 큰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거였다. 주인에게 있어서 자신이 시키는 대로 달리지 않는 개의 쓸모는 이것밖에 남아 있지 않았던 거 같다. 개로서 살았던 인생의 처음인지 마지막 인생은 그렇게 마감이 되었다. 다만 그날 바로 털가죽이 벗겨져 거무죽죽한 보신탕이 되었는지, 얼마쯤 더 살다가 보신탕이 되었는지, 이후의 기억은 남아 있지 않았다.


하룻강아지 시절부터 등산이 취미인 주인을 따라 죽도록 산을 타야했던 그 일생은 마지막엔 가장 자신 있던 달리기 실력을 발휘해 도주를 하지도 못하고 끝나버렸다는 점이 뇌세포 어딘가에 생선가게 앞의 비린내처럼 애석한 감정을 남겨놓은 게 분명했다. 나는 그 이후의 모든 인생을 통틀어 달리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 5편에 계속




월,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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