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씸한 원숭이

코타 키나발루, 인도

by 호림

“돌려 줘!”

원숭이를 향해 외쳤다. 투어를 떠나기 직전 가이드로부터 “비닐봉지를 보면 원숭이들이 뺏어가니, 들고가지 마세요”라는 경고를 들었다. 아이를 달랠 요량으로 유기농 과자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탄 게 화근이었다. “무슨 일이야?”, “원숭이가 아기 과자를 가져 갔대!” 술렁이는 소리들이 들린다. 몽키바나나까지 두둑하게 챙겨서 달아난 원숭이를 애타게 불러도 원숭이는 깊은 맹그로브 숲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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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봉지를 가져가서 저 녀석들이 그 봉지를 열 수 있을까, 기껏 훔쳐 갔으니 잘 먹기라도 해야될 거 아닌가, 게다가 이제 과자를 뺏겼으니 아기가 울기라도 하면 무엇으로 달랜단 말인가!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 따로 몸 따로 아이 손에 몽키바나나를 쥐어주고 원숭이들을 향해 옆사람들처럼 흔들었다. 원숭이들은 기웃거리며 사람들이 너나없이 들고 있는 몽키바나나를 보면서, 정작 보트 가까이로 다가오는 발길이 조심스러웠다. 원숭이들은 원숭이를 얻기 위해 재롱을 부릴 필요도 없었다. 거저 주는 걸 그저 가져가기만 하면 될 일을, 무슨 연유인지 원숭이들 쪽에서 망설였다. 사람 손에 들고 있는 바나나를 잽싸게 낚아채서 달아나는 원숭이가 출현하면 환호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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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가 나타난 쪽으로 어른들까지 몰려드니 보트는 한쪽으로 기우뚱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가이드 일행은 이럴 줄 알았던 것처럼 뒤편으로 이동해 무게중심을 잡는다. 뱃전에서 가까운 나뭇가지에는 한 원숭이 품에 새끼 원숭이가 안겨 있었다. 새끼는 누가 강제로 떼어놓기라도 할까봐 잔뜩 겁먹은 표정이다. 작은 손으로 야무지게 엄마를 붙들고 있다. 말랐지만 털 색깔도, 눈망울도 제 어미를 빼쏘았다. 바나나도 소진되고, 원숭이들도 떠나가니 기울어졌던 뱃머리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사람들도 각자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때도 그랬다. 인도의 마테란에서 말이다.

그 고장의 특산물인 찌끼(엿 종류)를 먹는데 어디선가 출현한 원숭이가 순식간에 찌끼를 탈취해갔다. 그 바람에 원숭이 손톱에 손등을 긁혔다.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주변에서 이 상황을 목격한 인도인들이 상처 난 손을 만지작거리는 내 주위로 몰려와 "You die(너 죽어)"라고 말했고, 자기네끼리 수군거리기도 했다. 처음엔 웬 헛소리인가 했지만, 여럿이 입을 모으니, 섬찟해졌다. 원숭이도 개처럼 광견병을 전염시킬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광견병은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인 질병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맙소사, 미친X이 될까 봐, 죽을까 봐, 겁이 왜 안 나겠는가. 의료 기계라고는 없는 열악한 병원의 여의사가 다친 손을 바라보는 심각한 표정을 거두지 않고 "원숭이에게 이빨로 물린 게 아니기 때문에 아마 괜찮을 거예요"라고 말하며 상처 부위에 소독약이나 발라주는데, 그건 누가 봐도 그 허술한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최상의 치료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인 게 분명했다. '객사'할 걱정은 며칠간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발열 증상은 없었고, 침을 줄줄 흘리진 않았고, 더 좋은 소식은 죽지 않았다! 따끔거리던 상처 부위는 말끔하게 나았다. 인도땅에서 광견병에 걸려 객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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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앵으앵"

코타 키나발루의 보트는 이동하는데 갓 돌을 지난 우리 아기가 목청이 터져라 울며 잠투정을 하기 시작했다. 또 다시 과자를 훔쳐 간 괘씸한 원숭이들을 떠올렸지만, 깡마른 새끼 원숭이와 어미를 생각하니 화 낼 일도 못 되었다. 그 보트에서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를 달래며, 좀전의 새끼 원숭이가 잘 자라서 그의 아이들도 이 터전에서 자손을 낳고 잘 살길 바랐다. 아이가 독립할 때까지 어미의 마음은 원숭이나 사람이나 피차일반(彼此一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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