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인가요? 배인가요?

인도 남부 알러피

by 호림

집배(하우스 보트)를 타러 이동했다.

말 그대로 집 모양의 배.고요한 물길을 떠 가는 집배. 인도 남부 케랄라주 알러피(Alleppey)에서 집배를 탈 수 있다. 집사와 요리사도 따로 있어서 호텔 서비스 부럽지 않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 "No problem"을 연신 반복하는 금시계를 찬 사내가 내민 팸플릿을 보며, 어떻게하면 한푼이라도 더 쓰게 만들지 고민하는 사내의 말은 대충 흘려들으며 가장 수수한 집배를 가리켰다. 그마저도 예산에 초과되는 것이었고, 어느 정도 바가지는 감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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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가는 길에 들른 곳에서 신선한 민물 로브스터를 사서 요리를 해준다. 마침 출출할 때였다. 그런데 로브스터가 맞는지부터 의심이 됐다. 커다랄 뿐 새우 같은 모양새였는데, 로브스터라고 하니 그러려니 믿고 먹기로 했다. 이거야 원, 먹을 부위도 많지 않다. 때마침 비린내를 잡으려는 건지 향신료 냄새가 강한 생선요리가 밥상에 올랐다. 향신료 냄새가 센 생선요리였지만 양은 푸짐했기 때문에 로브스터는 생선요리에 메인 요리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형국이었다. 그 정도 빼곤 1박 2일 동안 집배를 이용하며, 불편할 만한 건 일절 없었다. 진종일 할일이라곤 바깥을 바라보는 일이었지만 지루할 게 없었다. 고요히 물살을 가르는 집배 위에서,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두 팔을 과장스럽게 쭉 뻗어 기지개도 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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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배는 말하자면 물 위에 떠 있는 '별장'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런 수로만 있다면, 거처로 삼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은 고래기와집처럼 으리으리한 집배도 옆을 지나갔다. 2층짜리 궁전같은 집배를 보며, 새삼 돈의 위력을 느낀다. 다른 데 쓸 돈을 아끼자며 주머니를 털어서 겨우 집배를 구했는데, 집채만한 저 집배가 우쭐한 모습으로 파동을 일으키며 그 하얀 물살이 우리 배에 둔탁하게 부딪힌다. 물살은 말없이, 부딪혔다가 부드럽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물길에 동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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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전에 앉아 차를 마시며, 수련이 군데군데 떠 있는 알리피의 평화로운 물길을 한없이 바라봤다. 책을 읽기도 하고, 까무룩 잠이 들기도 했다. 깨보면 귓가에는 집배가 물길을 가르는 소음만 있을 뿐, 잠들기 전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이런 경우에는 목적지가 달리 없다는 것이, 시계가 따로 없다는 것이, 땅을 잠시 벗어난 것이 참 다행이었다. 길이 잔잔해서 멀미 걱정도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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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 요리사가 만들어주는 간단한 토스트 나위의 조식을 먹고, 그날 해야 할 일이란 커피나 차를 마시며 다시 배위에서 물길을 바라보거나, 일출이나 일몰을 바라보는 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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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배에서 1박 2일을 머물며 목도하는 일몰도 찬란했다. 1박 2일이라서 다행이었다. 더 있었다면 아마 이내 지루해졌을테니까. 이틀간 비도 오지 않는 날씨에 알러피의 물길은 고요하고, 집배는 아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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