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산지
"저기가 로스로리엔 숲이에요. 우리 요정이 사는 곳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가을엔 낙엽이 지지 않고 단지 황금빛으로 변하는 곳입니다. 나뭇잎은 봄이 되어 새싹이 돋을 때 떨어집니다. 그 다음에 나뭇가지로 노란 꽃이 만발하지요. 그때쯤이면 지붕은 금빛, 기둥들은 은빛으로 변화합니다. 그 숲으로 들어가려니 벌써 가슴이 뛰어요." <반지의제왕> J.R.R 톨킨
학교 도서관 책장 맨 아래에서 우연히 발견한 <반지전쟁(원제)>을 읽었을 때, 무한한 환상을 품고 상상해보곤 했었다. 세상 어딘가에는 로스로리엔이란 숲이 반드시 존재할 것 같았다. 하지만 소설은 현실에 기반을 둘지언정 허구라는 것을 국어시간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시절이므로 실제로 있을리가 없다는 것 또한 의심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반해버린 바로 그 몽환적인 숲은 하지만 실제 영화판에서는 만날 수 없었다. 그 대신 20대에 만난, 주산지는 책 속의 그 숲은 아녔지만 가슴 뛰게 아름다웠다.
가을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모든 색의 아름다움이 펼쳐졌다. 오래 머물지 않더라도, 어떤 여운은 오래토록 간다. 민박집 아저씨에겐 주산지 입구까지 차로 데려다주시는 신세를 졌었다. 전날 밤, 괜한 걱정으로 허술해보이는 문을 몇 번이나 확인하며 꼭 잠그고 배낭을 문 앞에 막아둔 게 어쩐지 죄송스러워졌다. 맑은 거울 같은 저수지에는 가을 풍경이 비쳤다. 나무들의 비틀린 몸뚱이를 보면 상상하지 못할 괴로움이 느껴진다. 그 기이한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신기한 노릇이다. 주산지의 나무들은 깊은 물 속에 있는 것은 아니고, 육지쪽으로 바특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육지에 속한 존재지만, 물을 갈망하는 존재이다. 뒤틀린 몸으로 땅에 속한 나무로서 물을 선망하는 그 대가를 겸허히 치른다.
물 속에 뿌리를 내리고 오랜 세월을 어찌 견뎠을까 싶지만 그것은, 사람으로서의, 선입견일 뿐이다. 아침 일찍 가더라도 주산지의 아름다움을 뷰파인더에 담기 위해 바삐 서두른 포토그래퍼들이 많다. 주산지는 웅대한 규모는 아니기에 30분이면 둘러보기 적당하다. 언젠가 다시 주산지에 방문한다면 그때는 물안개 핀 몽환의 세계를 보고 싶다.
"가을이 좋으니?"
나무는 대답이 없었다
가을이 오고 가는 것을 나무는 알지 못했다
그 자신이 가을이었으므로
다만, 가을이 오면 차오르던 눈물
바스락 거리는 소리의 빛바랜 눈물
바랜 눈물을 흘리며 서 있는 그 나무
가을이 오는지 알지 못하는 나무
눈물만이 오래도록
가을산을 비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