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를 향하는 비행기 안
비행기에서 새벽녘 잠결에 잠시잠깐 놀랐다.
멀쩡하던 비행기의 작은 창문에 금이 간 줄 알고, 자세를 고쳐 앉아 자세히 봐야 했다. 창문에는 바깥의 기후탓인지 결빙이 생겨 있었다. 괜스레 결빙 자리를 만져 보니, 역시 안쪽에서는 만져지지 않았다. 다시 보니, 창문에 핀 꽃처럼도 보인다. 비행기를 타며, 창문에 생겨 난 결빙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여행자이자 엄마인 나는 혜민스님의 글이 마음 속에 결빙처럼 금이 난 것처럼, 꽃처럼, 맺혔다.
아이를 데리고 처음 비행기를 탄 날.
아이는 전날부터 목감기가 있었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물약과 가루약 따위를 챙기긴 했지만 아픈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는 게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여행 첫째날부터 감기가 시들하더니, 둘째날에는 기침도 하지 않고 아예 감기가 나았다. 그 사실이 여행을 강행한 것 같던 마음의 짐을 덜어줬다. "따뜻한 나라 다녀오더니 감기가 싹 나았네" 시댁은 아픈 아이 데리고 여행 간 며느리에게 핀잔을 할 수도 있는데 그러시지 않았다. 아이가 따뜻한 나라에세 감기가 나았단 게 여행가인 엄마에건 고무적인 일이었다.
"쥐어짜내서 사는 사람 같군요. 그것도 얼마 남지 않은 치약을 꾹꾹 짜내는 것처럼."
어느 날 카운슬러가 말했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치약이었다. 임신 5주차, 산부인과에서는 초음파 사진을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초음파 사진에 검게 보이는 게 모두 피라고 했다. 임신 4개월, 양수가 부족하다는 뱃속에서 아기는 잘 놀았고, 임신 7개월, 태아가 너무 작다며 의사를 한숨짓게 한 아기는 입체초음파에서 웃고 있었다. 임신 9개월, 진통하는 동안 태아의 심박음이 자꾸 약해졌다. 응급수술로 제왕절개를 하고, 의사의 고개를 가로젓게 한 신생아가 우렁차게 울며 세상으로 나왔다. 마취에서 풀린 후, 내가 처음으로 본 모습은 내 아이가 하품으 하는 모습이었다. 지금도 그때 찍은 동영상을 보면 웃게 된다. 퉁퉁 부은 얼굴로 "어? 하품 하네"하며 마취 영향으로 아기를 보며 어눌하게 놀라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출산 후 내 아이는 2차병원에서 대학병원으로, 동네 소아과에서 의뢰서를 가지고 또 다시 2차 병원으로 거기서 대학병원으로 발이 닳도록 다녀야 했다.
한날 한의원에서 중국인 한의사가 "뭐든 급하게 생각하지 마요. 본인 심장이 못 버텨"라며 진맥한 손을 놓아줬다. 그는 알고 있었던 거 같다. 내 심장이 쥐어짜듯이 아플 때가 있다는 걸. 상담 시간 끝무렵 "산 넘고, 산 넘어, 물 넘고, 물 넘어, 이 고비들을 넘길 수 있다면, 저와 같은 처지의 사람을 돕고 싶어요. 돈도 없지만"하며 웃었던가, 울었던가 했다. 정말이지 무심코 나온 말이고 별소리를 했다고 생각했다. 카운슬러는 "그럼요. 지금 힘든 거 지나가는 거예요. 글을 쓴다면서요. 돈이 아니라 글로써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어요. 글을 써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던 거 같다. 그때 내 안에서 무언가 변화했노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테면, 글쓰기를 더 열심히 하게 되었노라고 말이다.
마음은 관성의 법칙에 묶여 있어서 멋대로 자책하고, 멋대로 심장을 쥐어짠다. 내 마음속의 금 간 듯, 꽃인 듯, 자리잡은 적잖은 결빙은 비행기 창문의 눈꽃처럼 날씨가 온후해지면 저 스스로 녹아내릴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