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제주도에서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체험을 할 수 있는 목장 카페에 간 적이 있다.
동물들이 나오는 영상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실물을 보여주고 싶어 야심 차게 계획한 코스였다. 안타깝게도 그런 나의 야심은 꽤 높은 확률로 빗나가는 편이다. 본인의 생각보다 너무 큰 덩치 때문이었을까. 아이는 당나귀와 말, 알파카를 보고 울며 도망가기 바빴고 먹이를 주는 건 나와 남편의 몫이었다.
그리고 3월.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자라고 있는 닭이 무서워 아이는 등원할 때마다 어린이집 마당에서 뛰어노는 닭이 혹시나 자기 옆으로 올까 쏜살같이 달려 터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또다시 한 달이 지난 4월, 아이는 주말에 방문한 식물원에서 가늘고 길게 잘린 무를 거침없이 동물들에게 먹여주는 아이로 바뀌었다. 어린이집에 있는 닭에게도 "기쁨아~ 안녕~!" 하며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할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생긴 백화점에 아쿠아리움 카페가 있다. 꽤나 묵직한 가격으로 음료와 빵을 주문하면 물고기들에게 줄 수 있는 사료를 준다. 사료를 뜯어 한 알씩 아이의 자그마한 손에 쥐어준다.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는 아이의 표정에서 그 어느 때보다 큰 뿌듯함이 뚝뚝 묻어 나온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이의 입에 사료값으로 산 잉어빵을 먹이며 뿌듯하게 웃는다.
누군가를 먹인다는 것.
한 생명체의 입에 음식이 들어가 오물오물 먹어지는 모습을 보는 게 좋은 것은 본성일까? 모든 생명체는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하고, 대부분은 일정 기간 스스로 먹는 것을 해결할 수 없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최소 20년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인간은 아마도 지구 상의 생명체 중 그 기간이 가장 긴 생명체가 아닐까 싶다.
먹여주는 행위가 주는 기쁨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 생명체가 몇이나 될까. 못해도 20년은 먹여줘야 살아남는 인간에게 이 행위가 즐겁지 않았다면, 우리는 진즉 멸종되지 않았을까.
비록 이런 글을 써놓고 돌아서기가 무섭게 '또 밥시간이야!' 라며 '돌밥 인생'을 한탄할지 모르지만, 하여간 너의 오물거리는 입을 보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그렇게 먹여서 키운 네가 누군가는 먹이는 것을 보는 것도 나의 큰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