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871일의 기록
네가 나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였다면,
지금보다 더 너를 사랑해 줄 수 있었을까?
할머니가 손주를 보는 눈빛으로 아들을 보고 싶다.
순도 100%의 사랑으로만 채워진 눈빛.
손주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세상의 근심을 찾아보기 어렵다. 필요 이상의 무거운 책임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산들바람처럼 달콤하고 가볍다.
때론 너무 많은 삶의 조각들이 내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을 느낀다. 조각들을 떼어내 적당한 자리를 찾아주느라 아이를 제대로 보지 못할 때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이미 최대치를 찍은 것 같기는 하지만, 더 주고 싶은데 아니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일상에 치여 주지 못하는 것을 느낀다.
네가 나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였다면..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예쁘다고만 해줄 수 있었을까?
2021. 10. 13.
오전에 푸닥거리 한판 하고 허한 속마음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