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세 살에 처음으로 밥을 지어봤다.
그간은 즉석밥을 데우고, 엄마가 정성스레 소분해 놓은 냉동밥을 해동할 줄이나 알았다.
직접 밥을 지어본 것은 분명 결혼을 했던 서른 세 살의 겨울이 처음이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놀란 눈을 뜨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 남편도 그랬다.
자취까지 했던 사람이 어떻게 전기밥솥에 밥 한 번 해볼 생각을 안했느냐고,
당시 남편이 나를 ‘멸종야생동물’을 마주한 듯한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나는 법 공부를 한답시고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에 있는 학교 앞에 자취를 했다.
딸의 자취를 반대했던 아빠는 내가 이사하는 날까지도 입을 꾹 닫고 있었다.
그건 아마 서른 세살까지도 밥 한 번 직접 짓지 않아볼, 모든 것에 참으로 서툰 딸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십 대의 거의 모든 시간을 공부를 하는 데에 썼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에 집중할 능력까지는 없었기에 공부 하나에만 에너지를 몰아서 썼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스물아홉에는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밥벌이를 하고 스스로 앞가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기뻤다.
변호사가 된 후에는 또 다시 업무에 적응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나는 또 대부분의 시간을 일을 하는 데에만 쏟으며 지냈다.
수험생활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이었고, 그러다 결혼을 했고, 곧바로 아이를 낳았다.
가정을 꾸린 서른 세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살아가는 힘’이라는 게 꼭 ‘밥벌이를 할 수 있는 능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됐다.
남편과 맛있는 음식을 해먹고, 집을 예쁘게 가꾸고, 아이도 잘 돌보고 싶었다.
바쁜 중에 간간이 주어질 소중한 시간들을 잘 흘려보내고 싶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즐겁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싶었다.
그런데 공부만 한답시고 너무 많은 것들에서 손을 놓고 있다보니, 서툰 일들이 정말 많았다.
전기밥솥에 밥 하나 짓는 일조차 내게는 참으로 생소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건강한 음식을 해 먹는 일,
운동을 꾸준히 해나가는 일,
일과 휴식의 밸런스를 맞추는 일,
나를 행복하게 하는 취향을 아는 일,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내는 일,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일 등등.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많은 일들에 사실상 거의 걸음마 수준이었다는 사실을,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서야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었다.
너무도 서툴러서 시작하기에 엄두조차 나지 않는 일들도 많았다.
하지만 ‘뒤집는 일’ 하나를 위해서도 온종일 애를 쓰며 끙끙거리는 아이를 보며, 엄마인 나도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손등에 물이 찰랑거릴 정도’로 물을 받으라니!
그 알듯말듯한 설명을 이해하기가 어려워 몇 번이고 서툰 밥을 지었다.
떡인지 밥인지 알 수 없는 진밥을 지었다가, 밥알이 훨훨 날아다니는 꼬들밥을 짓기도 했다.
밥을 했지만 도무지 먹을 수가 없어 즉석밥을 데워 먹는 날들도 많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내 손으로 ‘밥’을 지어먹은 지 5년차.
내가 지은 밥 한그릇을 뚝딱- 맛있게 먹는 아이를 보면서, 여전히 서툴지만 그래도 한 보 전진했구나-라는 흐뭇한 생각을 해본다.
아직도 대개는 엄마 반찬을 얻어먹고, 만들어진 반찬을 사서 먹는 일상이다.
어찌됐건 쑥쑥 커가는 아이에게 ‘밥’만 해먹일 수는 없으니,
이제는 조금씩이라도 시간을 내어 다른 ‘요리’에도 도전해볼 생각.
서툴지만 한 걸음씩 더 맛있어질 나와 우리 가족의 밥상을 위해,
용기를 내서 오늘도 한 보 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