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사려는데 남편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그거 집에 있는 옷이랑 똑같은 거 아닌가?”
하긴, 남편이 착각할 만도 하다.
짧은 크롭 기장에 몸에 딱 붙지 않는 어벙한 오버핏의 상의,
나팔꽃처럼 샤랄라, 사방으로 퍼지는 소위 ‘샤-스커트’.
요즘의 내가 가장 즐겨 입는 스타일의 옷들이다.
오버핏 상의는 몸에 핏 되지 않아서, 감추고 싶은 똥배에 힘을 주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이 있다.
짧은 기장 상의와 긴 기장 스커트를 매치하면, 작은 키가 훨씬 커보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다소 짜리몽한 나로서는 사랑해 마지 않을 수 없는 패션이다.
어찌됐건 같은 베이지 색상에, 똑같은 크롭 기장에, 어벙한 핏감까지!
집에 가지고 있는 것과 거의 똑같은 느낌의 숏 트렌치코트를 집어 들었으니, 남편으로서는 참으로 갸우뚱했을 것이다.
너무 마음에 드는데 해질 걱정이 들어 미리 한 벌 더 사놓으려는 건가... 하고.
“집에 있는 거랑은 살짝 달라. 기장도 팔길이도 살짝 더 길고... 그래도 너무 비슷한가?”
나는 멋쩍은 듯 실실 웃으며 집어 들었던 트렌치코트를 살짝 내려놓았다.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다가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졌다.
색깔과 질감만 다를 뿐 거의 같은 기장에, 거의 같은 모양인 샤스커트들이 옷장에서 일렬정대 하고 있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에는 물건을 사는 일이 참으로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선택지가 너무 많기도 하고, 특별히 무엇이 나와 어울리는지, 무엇이 나를 편안하게 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의 취향이라는 것을 잘 몰랐기에, 그저 들려오는 주변 목소리들의 영향을 받을 때가 많았다.
덜컹이는 버스에서 일사분란하게 같은 방향으로 흔들거리는 손잡이들처럼, 나 또한 그랬다.
이게 좋다, 저게 좋다- 이렇게 저렇게 흔들어대는 말들에, 그저 이리로 저리로 똑같이 흔들려댔다.
그렇게 흔들거리고 팔랑거리며 샀던 물건들에서는 만족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처분하느라 진땀을 뺀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무심코 지나치던 옷장을 진득히 바라보다가, 나에게도 나만의 취향이라는 것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는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이트와 베이지를 좋아하고,
편안한 착용감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며,
밋밋하면서도 살짝의 포인트가 있는 것을 사랑하는!
어쩌면 옷을 입는 일에서조차 나만의 취향이라는 것이 자연스레 쌓여왔는지도 모르겠다.
취향이 쌓이니 물건을 사는 일이 쉬워졌다. 실패하는 일 또한 줄어들었다.
그저 남들이 좋다고 하니 따라 사던 습관들도 많이 고쳤다.
마음도 편해지고, 경제적으로도 이모저모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나를 즐겁고 편안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일,
그것을 알고자 나에게 귀를 기울여 주는 일.
앞으로는 그 일들에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보면 어떨까
나도 모르는 사이 한뼘 더 자라있을 취향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조금 더 견고하고 안정감 있게 나를 데려가 주지 않을까
가고 싶은 그 어딘가로-
더 편안하고, 더 행복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