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카메라 촬영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큭큭 웃으며 내 모습을 영상으로 담고 있다. 지금 내 꼴이 영구 소장하고 싶을만큼 우스운걸까. 곧내는 나보다 더 길고 얇은 팔다리를 휘적거리기며 나를 따라하기까지 한다. 나는 그저 운동 중이었을 뿐인데...
안 그래도 좋지 않던 체력은 출산 후 더욱 급격히 떨어졌다. 남들 다 일하면서 하는 육아, 나도 누구보다도 거뜬히 해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오만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남들이 다 한다고 해서, 쉬운 일이라고는 결코 단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평소 운동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회사 출근과 육아 출근을 반복하며 만성피로에 찌들어 가는 내 모습과, 아이에게 조차 여유로움을 잃게 만드는 고갈된 체력을 더 이상은 용납할 수 없었다. 살기 위해 운동한다는 말을 결국엔 이해하는 때가 온 것이다.
어차피 운동을 해야 한다면, 나는 이왕이면 그럴싸한 운동을 하고 싶었다.
살랑거리는 샤스커트, 사뿐하고 우아한 동작의 발레
이리로, 저리로 유연하게 구부러지며 몸매 라인을 다듬어주는 필라테스와 요가,
매혹적인 모습에, 상당한 스킬까지를 자랑할 수 있는 폴댄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헬스 PT 같은.
누가 봐도 그럴싸한, 조금은 멋드러진 운동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 이런 운동하는 여자에요'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발레 수업을 등록하고, 나의 열정에 금방 닳아 없어지진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에 토슈즈를 2개나 구입했다. 하지만 예상할 수 없는 아이의 컨디션, 불현듯 닥치는 일들로 인해 수업에조차 제대로 참석할 수가 없었다.
결국 우아한 동작은 커녕, 나의 뻣뻣한 몸뚱이를 탓하며 스트레칭만 찔끔 하다가 발레 수업과 작별했다.
필라테스도, 헬스 PT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나의 체력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가 버거웠던 걸까. 나는 몇 번의 수업만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이러다간 체력을 기르기도 전에 힘들어서 일상을 놓아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두 운동 모두를 금방 포기했다.
아, 나는 운동은 아닌걸까...
좌절의 끝, 나는 우선은 '그럴싸한 운동하기'만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럴싸하진 않더라도, 내가 너무 힘들이지 않고 쉽게, 또 지금 상황에서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는 운동을 해보기로 생각을 바꾼 것이다.
집에서 홈트 영상을 보며 둠칫둠칫, 씰룩씰룩 몸뚱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동인가, 아니면 그저 '어떠한 움직임'인가. 쉽게 운동이라 정의하긴 어려운 몸짓이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기로 했다.
나는 늘어진 티셔츠와 버리기 아까워 집에서만 입는 허벙한 츄리닝 바지를 입고, 아기가 자고 난 늦은 시간, 혹은 출근 전 남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이렇게저렇게 계속 움직여댔다.
그것만으로도 피곤한 것인지 처음엔 사춘기 때보다도 얼굴에 뾰루지가 많이났다. 그래도 이정도는 어찌저찌 버텨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서 언제든 쉽게 접근할 수 있었기에, 다른 어떤 운동보다도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었다. 별거 아닌 듯 보이는 움직임들이었지만, 계속 이어나갈수록 힘과 체력이 붙는 느낌도 조금씻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얼마나 개운한지!
나도 모르게 '그럴싸한 것'들을 참으로 좋아해왔다.
그럴싸한 일, 그럴싸한 옷, 그럴싸한 집, 그럴싸한 차, 그럴싸한 운동 등등.
그런 눈에 보이는 것들만을 신경쓴다고, 사실은 나한테 잘 맞고 내가 편안한지, 또 내 상황에 적절한 일인지 등에는 별로 신경을 기울이지 못하며 살아온 것 같다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좀 그럴싸하지 않으면 어때?
내가 지금 편안하게 즐길 수 있고, 또 나를 행복하게, 건강하게 하는 것이면 충분한 거지.
남편은 종종 오늘의 영상을 꺼내보며 혼자 웃을지 모르겠다.
하낫둘-하낫둘-
그럴싸하진 않아도, 나는 이 엉성한 몸짓을 멈추지 않으려한다.
나를, 또 남편까지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그런 멋드러진 운동이 세상에 또 어디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