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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 도시의 별과 사라진 별

by 이호정

컬러는 빛이다. 빛이 사라지면 색도 사라진다.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색들은 빛과 함께 존재한다. 빛은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고 생명 그 자체이기도 하다. 빛이 사라지는 날 모든 색이 사라지고 모든 생명체도 사라질 것이다. 세상에 색이 존재한다는 것은 모든 생명체가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증거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수억만 가지의 색을 품고 있는 우주가 경이롭게 느껴지고 색이 가진 위대한 힘을 깨닫게 된다.


태양광은 다채로운 색을 볼 수 있게 해주기도 하고 하얀색으로 보이는 태양광은 빨간색에서부터 파란색 다양한 색채를 품고 있기도 하다. 한낮의 태양 빛 색온도는 약 5000K-5500K으로 이러한 자연광 아래서 우리는 모든 자연과 사물이 가진 고유한 색을 볼 수 있다. 빛은 색온도가 높아질수록 푸른빛을 띠고 색온도가 낮아질수록 노란빛을 띤다. 일몰과 일출 시간대 색온도는 약 2000K 정도로 이때 태양은 아름다운 붉은빛을 발해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흐린 하늘의 색온도는 약 6500K으로 푸른빛이 돌며 시린 느낌이 든다.


밤이 되어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세상은 또 다른 컬러로 빛나기 시작한다. 짙어진 어둠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고 어둠 속에서 빛나는 색은 다시 마음을 자극한다.

tempImageB64WaC.heic 반짝거리는 것들은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Tellers 9.5



밤에 뜨는 무지개


만약 누군가 서울에서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반포대교 달빛 무지개 분수’라고 말하고 싶다. 2009년 4월 완공된 달빛 무지개 분수는 어둡고 정적인 한강에 빛을 더하고 역동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약 700m에 이르는 한강의 넓은 강폭 덕분에 달빛 무지개는 힘차게 내뿜는 물줄기와 함께 더 웅장하고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최근 사랑받는 케이팝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물줄기는 더욱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2008년 기네스협회에 세계에서 가장 긴 교량 분수로 등록된 이곳은 한강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분수쇼는 비수기(4-6월, 9-10월)에는 12:00, 19:30, 20:00, 20:30, 21:00 5회, 성수기(7-8월) 12:00, 19:30, 20:00, 20:30, 21:00, 21:30 6회로 매회 20분씩 연출된다. 하지만 방문할 때에는 날씨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분수 가동시간 중 강수 예보가 있거나, 풍속 7m/s의 바람이 불거나, 15 NTU 이상으로 한강의 탁도가 높아지면 분수를 가동하지 않는다.

tempImageClaDa5.heic 어둠이 세상의 모든 색을 집어삼키고 보여준 색은 달콤한 꿈을 꾸게 한다. *반포대교 달빛 무지개 분수


이곳의 낭만을 느끼기 가장 좋은 때는 역시 한여름 밤인 것 같다. 무엇보다 시원한 물줄기에 더위를 식힐 수 있고 다채로운 여름 축제가 열리기 때문에 이 일정에 맞추어 간다면 더욱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잠수교를 따라가면 형형색색 역동적인 물줄기를 더 가까이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인공섬 3개 세빛섬도 무지갯빛으로 빛나며 아름다움을 더한다.


카페와 웨딩/연회장이 있는 ‘가빛섬’, 레스토랑과 펍이 있는 ‘채빛섬’, 와인바가 있는 ‘솔빛섬’에서는 달빛 무지개 분수를 바라보며 맛있는 음식과 커피 혹은 술 한잔을 즐길 수 있다. 무지개 멍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별다른 생각 없이 아무 말 없이 달빛 무지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힐링이 된다. 반포대교 달빛 무지개 분수는 멀리 떠나지 않아도 서울에서 멋진 여름휴가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tempImageNZhBMy.heic 매혹적인 서울의 밤 *반포대교 달빛 무지개 분수



로맨틱한 파리의 밤


한여름 빛의 도시 파리의 낮은 매우 길다. 밤 10시 정도 해가 지기 시작해 밤 11시가 넘어야 완전한 어둠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여름 시즌에 파리를 방문한다면 야경을 보기 어렵다. 여행객들의 경우 늦은 밤 낯선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이 위험하기 때문에 좀처럼 아름다운 파리의 밤을 마주하기 힘들다. 하지만 2023년 6월 여름 나는 오랜만에 방문한 파리의 야경을 못 보고 돌아갈 수 없어 마음먹고 계획을 세웠다. 파리 야경을 즐길 수 있는 여러 장소가 있지만 몽파르나스 타워는 가장 높은 곳에서 파리 시내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고, 쉽게 야간 택시를 타고 무사히 돌아갈 수 있는 곳이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로 38초면 56층 약 200m 높이의 전망대로 올라가 파리 시내를 360도 파노라마 뷰로 즐길 수 있다. 전망대 티켓은 성인 기준 스탠더드 21유로로 온라인에서 구매하거나 전망대로 올라가 입구에서 구매할 수 있고 일요일에서 목요일은 밤 10시 30분까지 금요일과 토요일은 11시까지 운영된다. 나는 밤 10시 즈음 도착해 전망대로 올라갔는데 이제 겨우 해가 지는 듯했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 파란 풍경에서부터 시작해 잠시 후 조금씩 푸른빛이 사라지면서 잿빛 풍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점점 짙은 어둠이 드리우며 수많은 건물의 노란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에펠 타워와 함께 촘촘하게 빛나는 작은 불빛은 별처럼 아름다웠다. 고요하고 잔잔한 풍경은 한동안 부대끼고 시끄러웠던 마음을 상냥하게 다독거려 주었다. 파리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래도록 그 풍경과 감성을 간직하고 싶어서 천천히 하나하나 작은 불빛을 눈과 마음에 담았다. 이내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에 서두르다 보니 파리의 밤은 더욱 짧게 느껴졌다.


정말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찰나인 듯하다.

tempImageWoFNJ5.heic 푸른빛으로 물든 파리의 밤 *Montparnasse Tower

도시에서 별이 사라진 이유


도심에서 별 보기가 어려워졌다. 어렸을 때는 언제든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쉽게 별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밤하늘에서 별이 사라졌다.


우리가 별을 볼 수 없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빛 공해 때문이다. 빛 공해란 인공조명의 부적절한 사용으로 인해 빛이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거나 조명 영역 밖으로 누출되어 사람과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상태이다.


2023년 1월 크리스토퍼 카이바 독일 보훔 루르대 지리연구소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빛 공해로 인해 밤하늘은 2011년부터 2022년 사이 매년 평균 9.6% 증가했다. 빛 공해로 밤하늘이 밝아질수록 우리는 별을 볼 수 없게 된다. 2016년 이탈리아·독일·미국·이스라엘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이 전 세계 빛 공해 실태 분석 결과, 한국은 국토의 89.4%가 빛 공해에 노출되어 있어 이탈리아(90.3%) 다음으로 전 세계 2위의 자리에 올랐다.


일본의 빛 공해 대책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한 조명환경분류에 따르면 자연공원과 전원에는 안전한 조명환경, 마을 지역과 교외형 주택지에는 안심되는 조명환경, 지방 도시와 대도시 주변 시가지에는 평안한 조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도시 중심가와 번화가에는 즐거운 조명 환경이 요구된다. 다시 도시에서 별을 보고 싶다. 적절하고 효율적인 조명 관리를 통해 빛 공해를 줄인다면 우리는 즐겁고 건강한 도시의 야경을 만끽하면서도 까만 하늘에 총총하게 빛나는 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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