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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숙면을 위한 컬러

by 이호정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이다. 아마 크게 아파 본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할 것이다. 건강해야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하고 원하는 것들을 누릴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건강이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최근 건강 관련 TV 프로그램들이 부쩍 늘어났고 유튜브에서도 건강 콘텐츠를 다루는 채널들은 구독자 수와 조회 수가 높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매일 건강 정보를 탐색하고, 화학 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유기농 과일과 채소를 고르고, 화학 첨가물이 포함되어있지 않은 먹을거리를 선별해 구매한다.


음식으로 다 채울 수 없는 영양을 위해 영양제를 한 움큼씩 먹으며, 건강한 아름다움을 위해 운동을 하고 식단을 조절하며 바디 프로필을 찍는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고 아무리 열심히 운동을 해도 매일의 일과 속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다치고 지치고 상처를 입는다. 길을 가다가 넘어지거나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로 인해 다칠 수도 있고, 유전적이거나 본래 자신의 약한 신체 부위 혹은 외부적인 영향에 의해 질병이 생길 수도 있다.


또한 매일 계속되는 인간관계 혹은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마음의 상처가 되고 그것이 쌓여 신체의 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흔히 원인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질병들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온전히 피할 수만은 없으니 잘 다스리고 치유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과연 컬러는 어떻게 우리를 도울 수 있을까? 컬러를 활용한 특별 처방법은 없을까?

컬러 푸드로 채운 식단은 몸과 마음의 치유를 돕는다. *lala table



치유의 그린

우리가 건강한 삶을 위해 단 한 가지 컬러를 선택해야 한다면 바로 ‘그린’이다. 그린은 숲과 나무의 생생한 자연의 색이고, 인간이 볼 수 있는 가장 넓은 색역은 지녔으며, 불균형을 맞춰주는 가장 중립적인 색이다.


1924년 샌프란시스코 병원에 처음 등장했던 녹색은 외과 수술실의 바닥, 수술보, 수술복의 색으로 정밀한 수술을 위해 고안되었다. 외과 수술실의 밝은 조명 아래에서 의사의 눈은 선명한 피의 붉은색에 집중적으로 노출되는데 이때 주변의 흰색 수술복이나 바닥의 흰색은 ‘보색 잔상 효과’로 인해 어지러움을 일으킬 수 있다. 우리 눈의 망막에서 색을 식별하는 추상체는 빨간색, 파란색, 녹색 중 한 가지 색을 장시간 응시하면 색을 감지하는 민감도가 떨어지고 반대로 보색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져서 잔상을 남긴다. 이후 녹색은 컬러 세러피와 함께 치유를 위한 대표적인 컬러가 되었다.


1950년대 미국의 컬러 컨설턴트 파버 비렌(Faber Birren)이 제안했던 ‘미스티 그린(Misty Green)’은 의료기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컬러가 되었고, 극장의 밝은 조명 아래 연기를 했던 배우들은 ‘그린 룸(Green Room)’에서 대기하거나 쉬어갔으며, 약물 복용이 아닌 신체 활동을 권장하는 ‘녹색 처방전(Green Prescription)’은 지속 가능한 치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가끔씩 TV 프로그램을 보면 암이나 심각한 질병 혹은 개인적인 사건 사고 이후 산으로 들어가 건강한 삶을 회복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산림치유는 숲이 지닌 환경 요소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 주는 자연 요법이다. 햇빛, 온도, 습도, 소리, 경관, 피톤치드, 음이온, 먹거리와 같은 산림 환경 요소가 쾌적함을 주고 면역력을 향상해 건강을 증진한다. 녹색 자체의 치유 효과라기보다 녹색 자연이 가지는 치유 효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과학적 인과관계를 따져보지 않아도 우리가 숲에 갔을 때 직접 느꼈던 안도감과 편안함을 상기시켜 보면 녹색 자연을 통한 회복 효과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대자연이 가진 녹색 에너지는 잃어버렸던 균형감을 맞추어 건강함을 되찾아준다.

도심의 초록 정원은 지역 주민의 치유 공간이다. *Tuileries Garden


녹색 자연환경과 여성의 수명과의 관계를 연구한 논문(2016)에서 2000년부터 2008년까지 8년간 여성 참가자 108,630명의 거주지 주변 녹색 식물의 양과 수명과의 관계를 추적한 결과 더 많은 녹지 공간에서 생활한 여성은 사망률이 12% 낮았다. 녹지가 많은 지역의 여성들은 야외에서 더 많은 사교 활동을 했고 이것은 정신 건강에 유익했다. 반면 녹지가 적은 지역의 여성들의 두 번째로 높은 사망률은 호흡기 질환이었다. 녹색이 가지는 건강함은 대자연의 순리를 따른다.



숙면을 위한 컬러 조율법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다 잊고 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스트레스가 심한 날 꽤 오래 잔다. 잠을 자는 동안은 복잡한 생각도 애끓는 감정도 멈출 수 있다. 현실 부정의 방어 심리도 있지만 한참을 자고 나면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마치 컴퓨터가 갑자기 안 움직일 때 혹은 하루에 한 번씩 리부팅해주는 것이 컴퓨터 정상 작동과 성능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성인의 권장 수면 시간은 8시간이다. 8시간 수면은 건강한 신체 유지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지키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학업량이 많은 고3이나 마감이 임박한 업무 혹은 불규칙한 생활로 인해 수면 시간은 들쑥날쑥하거나 부족하거나 수면의 질이 저하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양질의 수면을 통해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수면 환경에 많은 요소를 차지하고 있는 컬러를 적절하게 조율하면 숙면을 취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첫 번째, 빛을 차단한다. 수면유도물질인 멜라토닌은 어둠 속에서 분비가 촉진된다. 침실에 있는 조명 기구는 반드시 소등하고 전자 기기에서 새어 나오는 작은 불빛도 차단하는 것이 좋다. 외부의 조명이 창문으로 들어온다면 암막 커튼을 통해 차단한다. 잠들기 전 수면을 유도하는 조명색은 색온도가 낮은 따뜻한 색이 좋다. 낮은 조도의 전구색 조명은 편안한 정서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의 LED에서 많이 방출되는 블루 라이트(Blue Light)는 멜라토닌 생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침대에서 스마트폰 사용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수면 전 색온도와 조도를 낮추면 보다 빨리 수면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


두 번째, 침실 인테리어 컬러를 선별한다. 흥분감을 유발하는 빨간색 계열이나 요란한 색채의 침실보다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블루, 그린, 화이트 컬러의 침실이 숙면에 유리하다. 블루는 긴장감을 이완시키고 그린은 안정감을 느끼게 해 주며 화이트는 색의 자극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의 정화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침구와 벽지를 이러한 컬러로 선택하면 숙면을 부르는 침실을 완성할 수 있다.


세 번째, 컬러 소음을 조율한다. 라디오 잡음이나 고장 남 텔레비전 소리 혹은 선풍기나 진공청소기 소리에 비유되는 백색 소음(White Noise)은 모든 주파수의 성분을 동일한 세기로 포함하고 있는 광대역 사운드이다. 2017년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백색 소음은 일반적인 환경 소음 대비 잠들기까지 걸린 시간을 38% 감소시켰다. 2021년 소음이 많은 뉴욕시에서 수면 장애를 호소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 백색 소음이 수면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이유는 백색 소음 자체가 수면에 도움이 된다기보다 수면에 방해되는 주변 소음을 가려주기 때문이다.


최근 숙면에 도움이 되는 컬러 소음으로 주목받고 있는 건 바로 분홍색 소음이다. 광대역 사운드이지만 옥타브가 높아질수록 주파수 세기가 감소하는 분홍색 소음(Pink Noise)은 백색 소음보다 낮은 음조로 약한 빗소리나 강물, 바람 소리에 비유된다. 2020년 게리 가르시아-몰리나 외 2인의 실험에서 수면으로 전환됨에 따라 분홍색 소음의 볼륨이 줄어드는 시스템을 개발해서 참가자들에게 들려주었더니, 더 빨리 잠들고 더 빨리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2020년 마르조 M 샤드 외 4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분홍색 소음이 비렘수면의 N3단계, 즉 가장 깊은 수면 상태를 향상했다.


다양한 실험 연구 결과들이 백색 소음이나 분홍색 소음이 수면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만, 대규모로 장기간 이루어진 실험이 아니었고 과학적 근거도 부족하다. 결국 숙면에 도움이 되는 컬러 소음은 직접 각각의 컬러 소음을 들어보고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주의해야 할 점은 적당한 볼륨으로 귀에 무리가 가는 70 데시벨을 넘지 않는 것이다. 비교하자면 우리가 대화하는 소리 혹은 식기 세척기의 웅웅 거리는 소리가 60 데시벨 정도로 들었을 때 시끄럽지 않고 편안하게 느껴질 정도로 볼륨을 조절하는 것이 좋다.

차분한 톤의 블루 컬러는 침실의 수면 환경을 만드는 데 효과적이다.


우리에게는 잠시 멈추고 쉬어가는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렸을 때에는 자연의 녹색보다 도시의 화려한 조명이 좋았고 하고 싶은 일들이 많고 자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쉼’이 주는 치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그리고 완전한 휴식 속에서 마주하는 색은 우리에게 필요한 답을 조용히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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