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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Oct 23. 2021

어느 시간 강사의 죽음

TV를 보다가 대신 쓴 유서,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

107번째 에피소드이다.


고독사 연구를 해보며 '인간의 죽음'에 관해 생각해본다. 그러다 정말 예전에 썼던 글하나를 찾는다. 벌써 10년도 더 된 글이다. 군대 휴가를 나와 TV에서 '시사고발' 프로그램 중 어느 시간 강사의 죽음을 다룬 내용을 보다 벌써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 쓴 글이다. 왠지 그 사람을 대신해서 유서를 써주고 싶었다. 내가 그때 정확히 왜 그랬는지.. 솔직히 어떤 감정인지 자세히 생각나진 않는다. 하지만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메세지를 그대로 흘러가버리게 두고 싶지 않았나보다. 이십대 초반의 글이라 문장력은 떨어져도 진심은 있다.


-어느 시간 강사의 죽음 (2010년)


역겨운 세상이다. 하필 군대 휴가 나가서 모처럼 가족끼리 모였는데 사람이 죽고 사는 이야기를 접하다니. 그 이름 없는 시간강사가 나에게 한마디 던져주고 가는 듯해서 펜을 잡고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그 시간 강사의 유서엔 누가 학생 가르치는 교육자 아니랄까봐 노트 필기식으로 띄엄띄엄 적혀있는 것이 전부다. 세상에 대한 원망 그리고 이어지는 절망. 이것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지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그가 나에게 던져준 메세지를 나는 생각했고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이지만 교육자로서 감정에 치우치기보다는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해야 하기에 못했던 말들을 내가 대신 적어본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내용을 적으며 고인의 명복을 빌겠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제자들에게 고함"

역겨운 세상이다. 실력만으로 안 되는 것이 세상이치라고 했던가? 물론 운이라는 요소가 작용한다는 건 나 역시 세상을 살다보니 자연스레 습득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가끔은 부당하고 억울한 부분이 있더라도 수용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돈.. 그것이 무엇이길래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뽑아놓고 있단 말인가? 인류가 탄생한 이래 문명의 발달은 농경사회를 바탕으로 물물교환 시대를 거쳐 지역 간 발생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합리성, 보편성, 편리성을 추구하자는 취지에서 화폐라는 녀석을 만들었고 그 명칭은 달라져 '자본'이라는 큰 덩어리로 서로 공조하고 담합하여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체제로 발전해왔다. 그의 경쟁상대였던 사회주의마저 냉전을 거치면서 승리하였고 명실상부하게 일인자 자리를 차지하여 수십년 간 그 권력을 놓치않고 독재정치를 해오고 있다. 무릇 권력이 오래되면 그 속부터 썩어간다고 그랬던가? 이제 암세포와 같던 그 징그러운 부분이 내장기관을 마비시키고 이제는 중추신경까지 자극하여 전체를 마비시키고 결국은 죽음으로 이끌고 있다.


내가 지금 처해있는 상황 때문에 세상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는 면이 없지 않지만, 그 생각의 중심에는 '1억'을 마련할 수 없다는 생각이 챗바퀴 구르듯이 맴돈다. 나에게 '1억'을 달라고 하며 교수 자리를 권했던 그 학교들.. 손 떨리면서 담배를 부여잡았지만 이내 내 손에서 담배가 주먹 사이에서 가을 낙엽마냥 부스스 으깨어져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 떨어지는 담뱃재들이 어린 시절의 향수와 꿈들, 이내 세월과 함께 무기력해지는 사회에 굴복하는 나 자신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어서.. 그것이 읽혀지지가 않아 오늘도 아침에 아내가 차려주는 아침밥을 먹다가 이내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에 얼굴을 쳐박고 내 안에 있는 역겨움을 비워내었다. 꺼이꺼이 울며 화장실에서 나오는 나를 보며 아내는 그 거칠어진 손으로 내 손을 잡아주며 "당신, 건강 잘 챙기소."라고 말한다. 나의 젊은 시절, 포부와 할 수 있다는 용기 하나만 보고 가진 건 없었지만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나에게 맡겨버린 아내.. 그 마음씨가 너무 고마워 지금까지 힘든 시기도 이겨내었건만 세월 속에 나는 더 약해지고 세상의 변화에 무뎌지며 그저 순응해가면서 이렇게, 삶을 마감하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돈'이라는 물질이 어떤 계급의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현실에서 실감하였다. 내가 이 세상 마지막 가는 길에 한 가지 쓰디쓴 교훈을 절실하게 얻고 가는 것 같다. 학창시절 역사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아 "선생님. 세상은 그리 냉혹한 곳은 아닙니다. 누구나 열심히 살면 그런 사건은 발생하지 않을 거에요."라며 내가 존경한 역사선생님께도 대들었던 '매관매직' 현상.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매관매직은 조선시대 말기에 성했지만 그 시기는 쇠퇴기, 폐망기 직전의 모습으로 밖에 기억되지 않는다. 조선말 세도정치 속에서 성행했던 매관매직. 그것을 나는 현대사회에서 마주하고 말았다. 나는 제자들에게 이런 사회와 싸우는 멋진 사회인이 되라고 말했는데.. 제자들아.. 미안하다..


지금 내가 이 세상에서 스스로 떠난다는 건 억울해서, 아니 내 자신을 비관해서도 아니다. 그냥, 그냥 잠시 9시 뉴스에서도 다루어지지 않고 기껏해야 새벽뉴스에 잠시 잠깐 소식으로 내 목숨은 맞바꿔져버리겠지만.. 그 찰나의 순간..! 그 찰나의 순간에 지금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바꾸어줄 그런 선구자를 기다리는 마음이다. 마치 저 멀리 초원 언덕 넘어 튼실한 허벅지의 말발굽 소리가 들리면서 힘차게 달려오고 있을 영웅을 기다리는 심정이라 해야 옳겠다.



커피 한잔의 여유

국회와 사회적기업, 스타트업CEO, 변호사(로스쿨준비생)


소개      

김인호입니다. 20대에는 사회적기업가로 살았습니다. 30대에는 국회비서관, 스타트업CEO, 변호사로 살려고 합니다. 그리고 40대에는 제 생각을 펼치며 사회를 설득시키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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