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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Sep 11. 2022

비혼주의 선언

비효율성을 행복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비혼'은 끝난다

177번째 에피소드이다.


미혼으로 서른 중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명절은 매순간마다 곤혹이다. 우선 돈 모으기도 힘든데 돈 나갈 일은 무진장 많고 또 '결혼' 압박으로 걱정어린 어른들의 시선을 감당해내야 한다. 가장 쉬운 건 약속을 가장한 도피인데.. 명절 전체 기간을 도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니 가족끼리 앉아 밥을 최대한 빨리 입에 털어넣고 자리를 뜨는데 집중한다. 서른이 넘어가면서 '결혼'이란 것이 쉽지 않음을 느낀다.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보면 결혼 그 자체를 넘어 사람들과의 관계에 관한 회의감이 온통 지배하고 있다. '귀찮다.'라는 짧은 표현이 모든 것을 내포할 수 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다 떼어놓고 귀찮니즘이 대부분 관계 맺기에서 발동하여 결국 파행으로 치닫는다.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극소수의 사람만이 퇴근 후에 마음 편히 만나게 되는 친구이자 동지가 된다. 이십대는 '1인 가구'를 실질적으로 경험하는 세대이므로 '자유'의 극대화를 경험한다. 간혹 찾아오는 외로움은 앞서 말한 극소수의 친구 또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 반려동물과 함께 보내면서 이겨내면 그만이다.


그렇게 나는 일종의 '비혼주의'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직까지 단정할 순 없지만 최소 '딩크족'은 확실하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다. 길 가다 아이들을 보면 꼭 그 자리에 서서 아이들을 쳐다보고 아이의 표정에 삼촌웃음이 지어져 한동안 무장해제 상태가 된다. 하지만 '결혼'과 '육아'는 종이 한장 차이가 아니라 나에겐 완전 다른 개념으로 인식되었다. '결혼'은 사랑하는 이를 만나 평생을 약속하고 서로 간 추구하는 이상향을 위해 달리는 레이스(race)라면, '육아'는 내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쌓아나아가야 하는 파이오니얼(pioneer)의 과정이다. 단순 책임감을 넘어선 공포심을 이겨낼 만한 용기가 내겐 아직 없다. 그래서 보통 딩크족일 것 같다 말하는 편이다.


'결혼'은 너무 사랑해서 24시간 같이 있어도 재밌고 보고 있으면 피식 웃음이 나오는 상태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서로 간 적당한 스펙과 각자의 삶을 터치하지 않는 극단적 개인주의자 상태이거나 둘 중 하나 일때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게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란 가치관이 자리잡히고 있다. 전자의 경우는 만나기 힘들고 후자의 경우는 아직 철이 덜 들어서인지 머리와 몸은 따로 놀며 타협되지 않는다. 그러니 현실성은 떨어지고 사실상 '비혼주의'와 같은 상태로 고착되고 시간은 지속되고 있다. 아이의 경우는 나이가 들어서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입양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쉽사리 해보는데 그걸 받아줄 수 있는 어른들, 그리고 반려자는 현실세계에서 찾기는 어려울 수 있다. '개인' 그리고 '자유'를 느낀 내게 건실한 가족 공동체를 이루고 책임감, 그리고 공포심을 이겨낼 만한 용기를 갖기게은 너무나 쉽지 않다.


다만, 최근 내게 하나의 영감은 준 순간이 있다.

대구에서 나보다 더 개인주의, 자유가 소중한 창업하신 한 대표님과 미팅을 하면서 들은 말이다. 일단 전제는 그 대표님이 나보다 더 하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그 부분은 동의했다. 수년간 알아오며 나보다 나이로는 몇해 선배이신 그 대표님을 보면서 '아! 내가 나이가 좀 더 들면 저렇게 되겠구나.'라고 느낀 분이었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 결혼을 하셨고 아이를 낳으셨으며 현재도 창업 아이템 발굴과 투자를 위해 밤낮을 뛰고 계신다. 그가 나에게 '비효율성'에 대한 관점을 설명해줬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자신은 사업하며 효율과 비효율에 관한 이야기만 주구장창하였다. 아이를 낳아보니 그런 비효율이 없더라. 아무리 끝을 내려고 해도 끝이 없고 큰 사건을 해결해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자잘한 사건들이 수없이 나타난다. 그럴때마다 속으로 '이건 너무 비효율적이야!' 라고 수없이 외쳤다. 근데 그 비효율성이 행복으로 바뀌는 순간이 있더라. 김대표한테 아무리 설명해도 이건 말로 표현을 못하겠다. 내가 그만큼 시적인 표현에는 약하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바뀌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김대표가 좀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하려면 비효율성을 행복으로 바꾸거나 바뀌는 순간을 반드시 만들어보고 느껴봤으면 좋겠다. 아침부터 육아 때문에 한바탕 하면서 우당탕 지나가고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볼 때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 평화 그리고 소중함을 느낀다. 김대표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내가 결혼, 그리고 육아 이후에 변한 것을 보면 김대표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 누구의 조언과 제안보다도 내겐 와닿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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