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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Jul 11. 2023

지방분권이 필요한 이유: 유토피아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에서 지방분권이 필요한 이유 찾기

248번째 에피소드이다.


우선, 이 에피소드의 소스는 함께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권지연 학우의 고민에서 비롯되었다. 유토피아는 세상 특이한 소재의 책이다. 유토피아란 고유명사화된 '이상향'을 만들어낸 책이기도 하며 작가부터가 도저히 그 책을 집필할 수 없는 영국사회 최고의 기득권층이다. 법률가로서 가장 명망받는 자리인 대법관까지 오른 토마스 모어는 헨리8세의 신임을 한몸에 받는 인물이었다. 헨리8세가 첫째 부인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볼린과의 결혼을 감행하고 왕위계승법을 만들자, 끝끝내 서명을 거부하고 반역죄로 사형을 당한 고결한 인물이다. 그가 쓴 유토피아는 형식마저 재밌다. 라파엘이란 가상인물을 통해 작가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하는데 이것이 소설인지, 인터뷰형식의 자서전인지 읽다보면 헛갈릴 정도이다. 그만큼 1516년에 쓰여진 토마스모어의 공상소설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바랬던 이상향의 외침이기도 하다. 한번 시간내 꼭 읽어볼만한 고전이다.


책에서 서술된 유토피아는 꽤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아래 내용은 권지연 학우가 분석해놓은 글을 인용하였다. "유토피아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54개의 도시국가가 모인 나라인데, 각 도시는 같은 설계도로 지어 형태가 같다고 하니 외형적으로 구별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유토피아 내에서 표현되는 개별가구는 유권자, 시포그란토르는 선거인단, 시장은 대통령으로 치환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유토피아의 도시국가는 고대 아테네의 도시국가와 유사한 개념이지만 후자에서는 모든 시민이 아고라에서 토의하며 대소사를 결정한 직접 민주주의인 것에 비해, 유토피아는 30개 가구 당 1명의 관리(시포그란토르)를 선발, 200명으로 구성한 의회에서 시장을 선출하는 대의민주주의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또한 30개 가구를 대표하는 관리(시포그란토르)를 10명으로 묶어 관리하는 또 다른 관리(트라니보라)가 있고, 이 트라니보라가 시장과 함께 시정협의회를 통해 공무를 주로 처리하는 주체가 된다. 현재 대의제와의 차이점은 30개 가구를 대표하는 관리(시포그란토르)는 1년 임기이나, 선출된 시장은 탄핵되지 않는 한 종신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시장의 선출방식은 오늘날의 간접선거제처럼 보인다.  다만 트라니보라는 어떻게 선발되는지 찾지 못했는데, 해마다 선출되나 교체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 노동이 면제되고 학문 연구에 전념하는 학자 집단이 트라니보라를 배출한다는 것으로 보아, 트라니보라는 오늘날의 임명직 또는 일반직 공무원 개념과 비슷할 것으로 짐작된다. 한 도시 당 6천 가구로만 구성된 유토피아와 달리 현대국가의 규모는 훨씬 더 크다. 유토피아의 1개 도시국가 규모를 현재 대한민국(이해를 돕기 위해 서울로 한정) 상황에 적용하면 성동구의 응봉동(‘23년 기준 5,948세대) 정도가 1개의 도시국가가 될 것이다. (참고로 응봉동은 성동구에서 3번째로 세대수가 적은 곳이다.) 좀 더 확장해서 유토피아의 도시국가 개념으로 성동구 인근을 재구성하면, 성동구는 약 22개의 도시국가로 구성되므로, 인근 기초단체인 중구(약 11개), 광진구(약 28개)까지 합치면 약 60개로, 모어가 구상한 유토피아의 크기와 비슷할 것이라 상정할 수 있다.서울, 더 나아가 대한민국 수준에서 이 3개 기초단체가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유토피아는 매우 작은 규모의 국가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유토피아는 현대 국가에 비해 아주 작은 인구로 구성된 사회에 속한 구성원인 모든 시민이(노예제도가 여전히 존재하는, 현대 기준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은 일단 제쳐두고), 각자 능력에 맞게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보람있게 하면서도 높은 생산력을 바탕으로 노동을 착취당하지 않으며, 자발적으로 학습하고 미덕을 추구하는 사회다. 관리나 시장도 시민들 위에 군림하지 않고 재능에 맞게 역할을 부여받은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선출되지 않는 임명직(또는 일반직) 관리도, 종신형 선출직도 가능한 것은 그저 다양한 역할을 각자의 자리에서 수행한다는 개념이 있기 때문인데, 유토피아의 이 모든 이상적 상태는 조율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정도인 인구 수(또는 가구 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유발 하라리는 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라는 개념을 상상하고 인지할 수 있게 된 사피엔스만이 무리를 이루고 상호 연대, 협력함으로써 지구상의 승자가 되었다고 분석했다. 이때 핵심적인 숫자는 150명의 사람(던바의 수)인데, 150명까지 개인이 사회적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최대 숫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사회 내 구성원의 수가 많아질 수록 구성원 간 긴밀한 관계형성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결국 이상적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현대 국가는 다운사이징이나 지역 단위의 분권화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를 인용하면서 굉장히 탁월한 분석이란 판단이 들었다. 실제로 유토피아에서 제시한 인구 수를 몇가지 가정아래 도출해보면 한양대가 위치한 성동구(27만 9,374명)보다 큰 30만 내외로 산출된다. 즉, 광역단위가 아닌 대도시 내 기초자치단체의 평균 인구 수에 근접하다. 1516년의 시대상황, 그리고 공상소설에 나오는 걸 기반으로 했다지만 우리가 꿈꾸는 것이 '유토피아'라면 사회적 관계망이 유지된 채, 행복감으로 치환시켜나갈 수 있는 필수 조건이다. 현재 국가를 다운사이징 시킬 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지방분권을 해야만 하는 이유로 합당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재정자립도 문제를 잠시 뒤로 접어두고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에 착안했을 때 지방분권을 통해 각각 도시국가가 된다면 유토피아에 가까워질 수 있다.


이전 에피소드에서 지방분권은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방분권을 현실화하기 위해선 기술력에 몰빵해 부산과 서울을 1시간 30분 내로 주파할 수 있는 KTX와 같은 고속열차를 만드는게 답일 수 있다고 했다. 그건 편의성의 영역이고 고도의 기술을 통해 실현가능한 유입채널의 영역이다. 유토피아는 이상향의 영역이다. 그 누구도 가보지 못했으며 평생 추구하지만 모두가 도달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삶의 희망과 동력을 얻곤 한다. 지방분권은 현실과 이상의 줄다리기의 영역이다. 현실에서 찾아내야만 하는 분야, 그러면서 결국 인간의 본질 영역인 철학과 가치가 고려되어야만 하는 분야이다. 유토피아를 통해 그 가치를 찾아보곤 한다. '지방의 시대'란 정책적 슬로건이 표를 얻기 위한 정치의 과정, 예산분배 편의를 위한 정책적 과정, 도시행정이란 공공영역의 생존과정을 넘어 거주하는 시민들이 행복하고 사회적 관계망이 튼튼하며 상상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지방의 시대가 도래하길 빈다. 유토피아를 통해 지방분권의 당위성을 찾아 기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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