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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Feb 28. 2021

엄마의 바지

엄마를 생각하며 쓴 자전적 소설

쉰아홉번째 에피소드다.


소제목과 동일하게 '엄마를 생각하며 쓴 자전적 소설'이다.

"바지"는 엄마의 삶을 버티게 해주는 매개체다. 삶을 산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 글을 썼을 때가 13년도이니 내가 스물다섯이었다. 8년이 더 흘렀고 나는 엄마를 더 이해하고 부모보단 동반자라 인식하게 되었다.


엄마의 바지     

작성일: 2013.10.07.~10.13

작성자: 김인호          


 “으아” 오늘 아침도 방 안에서 바지와 한바탕 중인 사람이 있다. 바로 나의 엄마다. 보다 못한 나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 “엄마! 제발, 바지 하나 사라. 응? 나 용돈 덜 줘도 되니깐, 바지 좀 사서 맞는 것 좀 입어라.” 한심스럽다는 감정이 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는지, 엄마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니, 그게 아니라 이렇게 멀쩡한데.. 왜 또 사 입어? 엄마가 요새 갑자기 살이 쪄 그렇지.. 바지는 아직까지 쓸 만하다.” 그 한마디에 나는 더 이상 말해 봐야 소용없음을 깨닫고, 방문을 닫고 나간다. “휴” 깊은 내 한숨 소리 뒤로 한 동안 조용하던 방 안에서 또 다시 “으아” 하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의 바지는 내 기억으론 못해도 다섯 번은 기운 것 같다. 바느질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신하는 엄마의 모습은 불과 몇 해 전부터다. 엄마의 바지가 우리 집으로 들어오게 된 배경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해 꽃무늬 치마를 좋아하던 엄마가 갑작스레 공장으로 내몰린 후 부터다. 평소와 다름없이 꽃무늬 치마를 입고, 공장에 나간 엄마는 그 다음날 새벽시장에 나가 시장 통 싸구려 바지를 하나 사왔다. 볼품없이 재단된 기장부터 이루 말할 수 없는 싸구려 냄새가 풍겼지만 사시사철 계절을 잊은 듯 제작된 원단은 내구성만이 강조된 바지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청색 바지 원단에 카고 바지를 연상시키는 무릎 옆 주머니는 바지의 저속함을 드러내는 백미였다. 엄마는 그 바지와 함께 바뀐 삶에 순응하길 자처한 듯 했다.     


대학교에서 우연치 않게 책을 읽다가 글 하나를 보았다. ‘부유한 사람일수록 날씬하고, 가난한 사람일수록 뚱뚱하다는 역설적인 현상이 현대 사회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현상이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제법 부유한 가정을 이루던 엄마의 몸에 변화가 생긴 건 분명히, 그 날 바지가 우리 집에 들어오고 난 후 부터였다. 어느 날 엄마가 밤에 집으로 돌아와, 나를 다급히 불렀다. “인호야, 엄마 허리 살 좀 이렇게 앞으로 밀어줘볼래?” 한동안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천상여자인 줄만 알았고, 그런 모습만 보였던 엄마에게 저런 우악스런 모습이 나왔다는 사실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서 있었다. 허리 살을 앞으로 밀어 바지에 우격다짐으로 넣은 엄마는 “휴~”하고, 흡족한 모습으로 나를 보았다. 이내 정신을 차린 나는 “엄마, 갑자기 왜 이렇게 살이 쪘어? 운동해야 하는 것 아니야?” 걱정스런 마음에 엄마를 쳐다보았다. “괜찮아. 나중에 좀 더 여유로워지면 운동할게. 아들! 요즘 용돈은 필요 없어? 필요하면 말해. 언제든지 팍팍! 아들 통장으로 엄마가 쏴 줄 테니깐! 엄마 믿지?” 그때, 나에게 그 말이 얼마나 슬프게 들렸는지 엄마는 알까?     


그 후로도 바지, 그 고약한 놈은 엄마의 허리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하지만 색이 다 바래져가는 바지의 모습에 나는 그 놈을 없애버리기로 결심을 하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늦게 귀가한 엄마가 바지를 벗어두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 나는 행동을 개시하였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세련된 하얀 바지로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그 놈을 들고, 집 밖으로 나가 헌옷 수거함에 넣었을 때 카타르시스는 절정에 달했다. ‘아! 내가 왜 이런 행동을 여태 안했지? 진짜 오늘 효도했다. 잘했어. 인호야. 잘했어. 인호야’ 기특한 마음에 한동안 잠자리를 설쳤다.


‘악!’ 새벽을 깨우는 알람소리 대신, 소름끼치도록 큰 여자 비명소리가 나를 깨웠다. 내 방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온 엄마의 얼굴은 상기 되어있었다. “인호야, 네가 그랬니?” 나는 영문을 몰라, 얼떨떨한 채로 가만히 있었다. 엄마의 손에는 세련된 하얀 바지가 구겨진 채 들려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그런 생각이 들 찰나에 갑자기 엄마가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들어본 서러움이 가득한 울음소리였다.

     

그때서야 알 수 있었다. 그 바지가 엄마에게 가지는 의미를.. 그녀를 독하게 마음먹게 한 매개체였음을.. 그리고 그녀가 지금까지 힘들지만 웃으면서 억지로 버티게 했던 동기였음을.. 그녀를 이해하고 나서야, 나는 그녀를 힘껏 안아줄 수 있었다. 엄마의 울음이 진정되자, 갑작스레 그 놈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엄마를 방에 앉혀놓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직 수거되지 않은 헌옷 수거함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지가 돌아온 뒤, 엄마가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내가 사 준 세련된 하얀 바지를 가끔씩 쳐다보기 시작한다. 나의 마음이 엄마에게 조금 전해졌던 걸까? 그 변화가 엄마에게 행복한 시간을 선사해주었으면 좋겠다. “엄마! 날씨도 좋은데, 주말에 나랑 데이트나 할래요? 대신 바지는 세련된 하얀 바지를 입고 행복하게 웃어야 됩니다. O.K?”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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