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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Oct 07. 2021

정시, 수시 그리고 학종

부산광역시 교육청 주관 토요학당에 관한 추억

아흔여섯번째 에피소드이다.


청소년 상담을 메일로 꾸준히 해주고 있다. 오늘 한통의 메일이 왔고 회신을 남겼다. 처음에는 멘토링을 해준 제자들 위주였지만 이제는 불특정다수가 가끔씩 메일을 보내온다. 불확실한 혼돈의 시대이자, 현실적인 위로가 필요한 시대인가보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상담들은 한번 정리해서 책을 낼 정도의 분량이 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대학입시'에 관한 상담이었다. 현대사회에서는 대학보단 직무과 재능 발견이라곤 하지만, 한 분야에 특출난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직까진 '대학'은 중요하다. 특히 학부모들에게 '명문대'는 자식들을 잘 키워낸 결과물로서 그 가치를 꾸준히 가져왔다. 대학입시는 이제는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분화되어 전문가 수준이 아니라면 쉽게 논할 수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대략적으로 정시, 수시 그리고 학종으로 나눌 수 있다. 정시는 수능의 반영치가 높은 과정이며 최근까지 상당히 그 비율이 줄어든 전형이다. 수시는 수능을 보기 전 내신과 대학면접 등을 통해서 먼저 합격한 후 수능성적의 최저등급으로 가는 전형이며 오랜기간 동안 그 분야를 확고히 해왔다. 최근 몇년전부터 등장한 개념이 소위 '학종'으로 불리는 학생부종합전형이다. 수시와 혼돈할 수 있지만 철저히 다르다. 내신이 그 자체 결과물이 중요하다기보다는 3년의 본인 스토리와 성장과정이 더 중요하다.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를 차용해온 것으로 한국식으로 적용되어 상당히 부침이 많게 정착되고 있다. 내가 입시전문가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세히 설명을 남겨놓는 것은 오늘 상담메일을 보내온 학생은 '학종으로 대학을 가는 건 가난한 사람에게 불리한 제도 아닌가'라는 철학적 내용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난 그 주장의 대부분에 동의한다.

나는 2008학년도 대학입학생이다. 그리고 끔찍한 '마루타' 세대였다. 고교 내신등급제의 서막을 울린 세대로 논술이라는 기이한 제도가 급속히 도입되었다. 지금부터 하는 에피소드에 충격을 받을 수 있으나 공교육 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앞서 수없이 말했듯 내 청소년 시기는 가난했다. 그러기에 학원을 다니지 못하고 오로지 독서실과 자습만으로 독학했다. 물론 내신과 더불어 수능까지 어느 정도 레벨까진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논술'이었다. 새롭게 도입된 제도는 공교육 현장에서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고 공교육 교사들은 그 역량을 소화해내지 못하고 '논술학원'이란 값비싼 사교육으로 학생들이 야자시간에 빠져나가는 것을 방치할 수 밖에 없었다. '야자'를 빼는 친구들의 논리는 "선생님. 저 논술학원 가야하는데요."였고 그 교사는 "그래. 잘 다녀와라"를 말할 수 밖에 없었다. 한달에 50만원도 훌쩍 넘는 논술학원은 내겐 어불성설이었다. 내가 고1 담당선생님을 아직도 '은사'로 존경하는 이유는.. 2학년을 올라가며 공통과정이었던 1학년을 통틀어 전교석차에서 아깝게 전교2등 한 나를 '부산광역시 교육청 주관 토요학당'에 보냈기 때문이다. 보통 그 과정을 한 학교당 1명씩 갈 수 있었는데 당연히 '전교1등'을 관례적으로 보내려고 했단다. 그때 이경숙 선생님은 "아니, 선생님들. 인호가 아무런 학원 도움도 못 받고 혼자서 공부해서 전교2등 한게 더 기특한 거 아니에요? 이런 혜택은 그런 아이한테 줘야지. 인호 보냅시다."라고 말해서 내가 가게 되었단다. 토요일마다 양정에 위치한 교육장에서 실시한 '토요학당'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특강과 함께 글쓰기 교육을 무료로 가르쳐 주었고 나도 그 수혜자가 되었다. 이경숙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 그리고 나도 '논술'이란 미지의 영역을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한번도 빠지지 않고 수료했다.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사교육을 통해 '논술'이란 과정을 수료했어야한다면.. 전혀 내겐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한학기마다 성적우수자에게 나온 동창회장학금마저 없었다면 공납금도 납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돌이켜보면, 세상은 참 냉정하다. 그리고 난 교육관계자 분들에게 묻고 싶다. "세상이 본인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그렇게 만만하냐고" 오늘도 누군가는 주어진 환경에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다. 그들이 가진 교육 유토피아에 희생되어도 상관없는 가치없는 인생은 아무도 없다. 몇년에 한번 꼴로 휙휙 바뀌는 교육제도는 오히려 기회의 상실로 이어지고 있다. 퀴즈가 있다. 하나만 물어보자. "갑자기 입시제도가 바뀌었다. 가장 쉽게 해결하는 방법은?"


정답은?

"그냥 돈으로 쳐바르는거다." 그러면 평타 이상은 친다. 그게 현실이다. 미지의 영역을 갑작스레 자신이 마치 만능의 해결책을 가진 교육제도인냥 던지지마라. 그 바뀐 제도에 가난한 이들은 정말 죽어나간다. 변화에 적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돈"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공교육은 공무원 집단으로 발빠르게 변화하지 않는다. 사교육은 결국 시장변화에 발맞춰 대응해야 하기에 누구보다 신속히 변화한다. 수요는 많고 공급이 적다면? 그 가치는 천정부지로 상승해서 소위 '부르는 게 값'이 된다. 그러면 여기서 '기회의 평등'은 깨지고 만다. 난 이것이 굉장히 불합리하며 불공정과 불평등을 낳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욱성질이 나게 하는 것은.. 교육부장관은 제도를 바꾼다고 말하고 일년도 못되어 사퇴를 한다. 정치적 이유라고 말하고 또 새로운 교육부장관이 오고 재검토를 하기도 하며 그저 정책의 연속성 이유를 들며 영혼없이 진행시키기만 한다. 도대체, 그 책임은 누가 지는 것인가? 학생들은 그들의 교육이상향을 실현시키기 위한 정치적 볼모인가? 나는 한순간도 국가를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며 교육이상향을 실현시키기 위한 정치적 볼모가 되고 싶은 생각도 다. 그저 내 삶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개인주의자이며 국가 공동체의 존재가 내 개인의 자유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기에 내 능력의 일부를 사회변화를 위해 기꺼이 쓰는 것일 뿐이다. 누군가의 삶에 대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면, 반드시 책임을 져라.! 오늘도 학생들은 고민한다. '대학'을 가장 잘 가서 지금의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미래는 새로운 기회를 발굴하기 위해.. 한번이라도 내가 위에서 말한 것을 고민해보자. 제도를 바꾸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고 제도가 수없이 바뀌니 그것을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돈"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있지 않다는 것이 힘든 것이다. 부모의 "돈"이 자식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지 말자.


쉽게 말해, 쪽팔리살지들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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