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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연 Jul 30. 2024

눈물이 날 때면 수플레를 먹습니다

1. 남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다

1.


 부모님이 깔아주셨던 고운 길을 사뿐사뿐 걸으며 어디까지 걸어갔을까.


 어느 날 문득 길을 잃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길을 걸었고, 부모님은 그런 나를 모임에 가실 때마다 은근하게 자랑하며 살아왔다. 실은 그게 내가 원하는 길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던 탓에 시간이 지날수록 내적 갈등은 커져만 갔다. 길은 오로지 한 길로만 나 있는 듯, 그렇게 걷기만 하면 되었으나 결국 멈춰 서고야 말았다.


 하나로만 이어진 길 속에서도 길을 잃을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오랜 시간 쌓아온 공든 탑은 보이지 않고 무수히 많은 물음표만이 남았다.


 난 어딜 향하고 있는 건가. 이게 맞는 건가.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무수히 많은 이들의 모습을 관음 하듯 찾아보았다. 더러는 용기 있게 자신의 길을 걷고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게 다수의 삶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내게 맞는 일, 동시에 사회적으로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을 찾아 헤맸다. 그 과정에서 기술을 배우고 자격증을 따기도 했고, 여러 직업군을 전전하며 일을 배웠다. 그러나 '이 곳에서 평생 일할 자신이 있는가?' 하는 물음에는 여전히 답을 망설였다.

 사회적으로 ‘남들과 다름’에 대한 두려움과 이대로는 ‘만족할 수 없는 삶’에 대한 절망감 사이 어디쯤에 난 망설이고 있었던 듯하다.


 이미 오래 걸어온 길 위에서 난 한참을 망설여야 했다. 이대로 더 걸어갈 것인가. 되돌아갈 것인가.


 나를 오래 알아온 이들은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응원해 줬지만, 정작 나를 가장 오래 안 나 자신은 쉽사리 끄덕일 수 없었다. 이 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므로.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멈춰 선 채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은 조금씩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이렇게 낭비되고 별 것 아닌 사람이 되려 멈춰 선 게 아니라고. 다시 시작하더라도 무조건 번듯하고 자랑할만한 삶을 살고야 말겠다고.


 욕심과 교만 속에서 지금 내가 서있는 길보다 더 화려한 무언가를 좇았다. 그런 곳들은 하나같이 모두가 걸으려는 길이었으므로 언제나 경쟁이 치열했다. 사방은 어느 부잣집의 담벼락만큼이나 높았던 반면 입구만은 터무니없이 작았던 곳. 거길 지나가고야 말겠다며 들어가지지 않는 몸뚱이를 욱여넣다 좌절하기를 수십 번.



 그렇게 어영부영 나가아는 것도 멈춰서는 것도 아닌 채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시간이 길어질수록 난 다시 지쳐가고 있었다. 이젠 정말 다시 직진하기에도 되돌아가기에도 남들보다 뒤처져버린 스스로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제법 속도감 있게 나아가던 삶이 어느 순간인가부터 억지로 잡아끌어도 더는 미동조차 하지 않게 되어서야 내 역량은 여기 까지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나라는 사람이 고작 이 정도라는 걸 직시하는 과정 속에서 처절하게 고통받고 무너져가고 있던 때.


 방황하는 나를 잡아준 이는 바로 엄마였다.



네가 정말 행복한 일을 해라. 네가 고민하는 것들은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다 보면 다 따라온단다



 오래 걸어온 길도, 욕심냈던 길도 그제야 다 접어 내려놓고 아주 어릴 적부터 꿈꿔온 일들을 마주했다.

사람을 공부하는 사람.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일.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바탕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심리학이라면 실은 이미 오래 전, 이렇게라도 공부해보고 싶다며 독학사(학사과정을 혼자 공부하고 시험을 통해 졸업할 수 있는 제도)를 통해 심리학과를 졸업한 상태였다. 그러나 직업으로 삼아 자리를 잡기에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제대로 된 학력이 필요했고, 국가 자격증을 따기 위해 나를 실습기관까지 이어주기에도 학교만큼 단단한 바탕이 없었다.


 누군가 그랬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조금 더 본격적인 자격증과 체계적인 가르침이 필요함을 깨달았을 때, 지금 내가 어디까지 되돌아가야 하는 지도 보였다.


 그렇게 내 나이 스물여덟.

 나는 다시 수험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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