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연 Aug 30. 2024

후회하는 일

: L에게

 후회라는 단어에서만큼은 네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의 너와 나는 그 어떤 말보다 이 주제가 가장 잘 어울리더라. 후회라는 건 지나가버린 데에만 쓸 수 있는 단어인데, 이렇게나 특별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었던 너도 결국은 과거가 되어버렸네. 여전히 너에게 난 현재인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너도 그럴까. 나는 이따금씩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어. 난 이 질문이 여전히 어렵고 고민스러워. 도대체 난 언제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그 일이 있기 전, 널 좋아하기 전, 아니면 널 아예 몰랐던 때로. 시간을 돌리고 싶지 않다는 선택지는 없는 걸로 하자. 이대로가 좋다고 할 만큼 우리의 모습이 좋지는 않을 테니까.



 꽤 오랫동안은 널 만난 일을 후회하지 않으려 애썼어. 그래도 아주 많이 좋아했었으니까, 널 좋아했던 마음만큼은 지켜주고 싶었달까. 세상 모두가 너에게서 등 돌려도 나만큼은 그러면 안된다고 얼마나 스스로를 다잡았는지 몰라.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네가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때마다 난 고맙다고 대답했어. 난 그저 너에게 고맙다고 말이야. 널 만났던 일, 그렇게 내가 너라는 세상 속에서 숨을 쉬고, 나의 인생이 뒤바뀌게 된 그 모든 일들이 난 고마웠어. 과거의 난 그 순간보다도 엉망이었다고 생각했거든. 지금이라고 엉망이 아니란 건 아니지만, 결국 난 살아남았잖아. 그 사실 하나로 충분했어. 결과가 엉망이어도 너를 만나고 알게 된 사실까지 엉망이길 바라진 않았기도 하고 말이야.     




 너는 관계가 언제부터 끝이라고 생각해? 사귀다 ‘우리 이제 헤어져’하는 순간부터가 그 관계의 끝인 걸까? 그렇다면 너는 이미 10년도 더 전에 나와 끝났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생각이 조금 달라.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난 비로소 끝이라고 생각해. 너 없이 지내는 내가 불행하길 바란다고 네가 말했던 그 순간에도, 그리고 10년이 더 지나서까지도 난 여전히 이별하는 중이었거든. 네 연락 한 번에 세차게 마음이 흔들려버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지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10년이 넘도록 삶이 아무리 힘겨워도 후회는 하고 싶지 않았다. 널 선택했던 지난날의 나 자신을 저버리는 것만 같아서, 나의 모든 선택들은 그 순간의 나에게 최선이었다고 주장했어. 그런데 다른 누군가 마음에 들어오고, 그 사람이 내 지난 과거까지도 그러안아 주자 조금씩 내 안에 가득 차 있던 네가 빠져나가는 걸 느껴. 그래,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서로를 망가뜨려가고 있었던 악연이었고, 만나지 않아야 했던 인연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인정할 수 있게 되었어.


 그러고 나니 우리의 인연은 만나지 말아야 할 악연이었다는 것도 알겠더라. 남들이 우릴 더러 악연이라고 할 때, 그게 그렇게 듣기가 싫었거든. 세상 모든 인연에는 배울 점이 있는 게 아니냐고. 그렇다면 악연이랄게 무어가 있겠냐면서 항변했었는데. 지금은 정말 만나지 말아야 하는 인연이라는 것도 존재한다는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어. 우리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너도 그리고 나도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었겠지.

     


 일 년 전, 너에게 편지를 보내며 이게 우리의 마지막이라고 그랬었는데, 이렇게 부치지 못하는 편지가 한 통 남아버린다. 이제야 내 삶에서 널 떠나보내. 지금 난 그때 그 순간들을. 조금은, 후회해. 안녕.

이전 03화 첫 성공의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