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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연 Sep 06. 2024

사랑이론

: X에게

 하나의 질문이 긴 시간 속에서 이어지고 있었어. 처음 기억의 시작은 X로부터 시작되고 있었지만, 그 끝은 K에게 닿아있었으니까. 살아가는 동안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준 대상을 하나로 딱 잘라 특정할 수 있을까. 누구의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고민하던 끝에, 내 오랜 기억이란 낙엽 속에 두껍게 묻혀있던 X, 너를 잠시 꺼내어 본다.


     

 사실 너의 이름은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아. 너는 내게 너무도 짧게 지나간 인연이었고, 이젠 제법 오래된 이야기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래서 너의 호칭을 미지수, X라고 붙여봤어. 오래된 기억인 만큼 아무리 떠올리려고 한들 기억나지 않을 걸 알기 때문에 굳이 기억해내려 하지도 않았지만. 네가 내게 남긴 건 너의 이름이 아니라 내게 전했던 말들이었으니까, 이름 같은 건 그렇게 중요하진 않을 거야.


    

 널 만났던 게 벌써 십수 년 전의 일이야. 그때의 내가 사람을 대하던 방식은 거칠고 투박하기 짝이 없어서, 늘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상처를 입히는 방법을 선택해왔어. 그런 나의 무책임한 선택들에 마음을 다친 이들이 많아. 그리고 그중 하나가 너였을 거야.



 너를 만나게 되고 난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나 깊이 마음을 전할 수 있단 걸 느꼈었어. 네가 전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진심이 무겁게 담겨있어서, 늘 내 마음을 깊이 울리고 있었거든. 그걸 처음 느꼈던 건 내 생일 날이었어. 언젠가부터 챙겨주는 이 없게 된 내 생일이었으니 생일이라는 자각조차도 하지 않은 채였다. 그런데 너에게서 문자가 왔어. 정각이 지나자마자 가장 먼저 축하해주는 네가 있었다. 내가 이런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


     

 그래서였어. 내가 널 떠났던 것은. 네가 빠르게 내 마음 안에서 커지는 걸 느끼고 난 그만 도망쳐 버렸지. 내가 사람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일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은 나중 일이라 난 설명할 수도 없이 그저 도망만 쳤어.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와 함께 미안하다는 말을 연거푸 전했다. 처음엔 괜찮다며 애써 마무리했던 너지만, 반복되는 사과에 너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나 봐. 너는 차게 식은 말투로 말했다.

     

미안할 행동을 하지 말았어야지     


 그 말을 듣고서는 더 이상 사과도 무엇도 할 수가 없더라. 말문은 막히고 머리가 띵해진 나머지 그만 입을 다물었다.


    

 네 말은 언제나 내 마음을 크게 울린다. 이제 와 돌아보니 사랑할 때도, 이별하는 그 순간까지도 난 너에게서 참 많은 걸 배웠단 생각을 해. 사랑받으면서 사랑하는 법도 배운다고 했던가. 그날 상대에게 미안할 일을 남기지 않는 것. 그게 내가 배운 사랑의 기본이었어.



 얼마 전에도 나는 기본을 지키지 못해 이별을 했고, 다시 홀로 머물러 있다. 언젠가는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사실 자신은 없어. 지금은 다른 것보다도 나는 내게 미안한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자신에게 미안하지 않을 삶을 사는 일이 먼저인 것 같아. 이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이겠지.  

   

 안녕, 나에게 사랑하는 법을 알려준 X. 부디 사랑 가득한 하루 보내고 있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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