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기 전, 그 사이
무대 뒤편.
축제의 불빛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여전히 무대는 환호성으로 들끓고 있었고, 곳곳에서는 들뜬 웃음소리와 음악 소리가 파도처럼 겹겹이 밀려왔다. 그러나 유연은 그 모든 소리가 피부를 뚫고 들어오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상이 그녀를 지나쳐 가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조명과 관중의 함성, 무대 위를 가득 채운 열기마저도 어느새 먼 배경음처럼, 멀어지는 전자음처럼 들릴 뿐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MC의 목소리가 축제의 중심을 다시 붙잡았다.
“여러분~ 드디어 무대에 오를 시간입니다! 오늘 밤을 책임질 감성 밴드, ‘세 번째 계절’입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관중석에서는 한 번 더 커다란 함성이 터졌고, 그것은 마치 축제의 밤을 환기시키는 불꽃처럼 빠르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그런 열기조차도, 유연의 귓가에는 마치 물속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처럼 불분명하게 스쳐 지나갔다. 마음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고, 머릿속은 안개처럼 뿌연 채로, 단 하나의 감정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는 상태였다.
무대에서 내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건만, 유연에게는 그 모든 장면들이 하나하나 슬로우 모션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조명이 비췄던 순간, 건욱의 얼굴, 떨리는 손끝, 노랫말, 관객석 어딘가에서 울리던 비명 같던 환호, 그리고 그 사이를 서성이는 자신. 그 모든 것이 파편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기를 반복하며 그녀의 마음을 조용히 휘저었다.
그런 유연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던 보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누나… 괜찮아?”
순간, 그 짧고도 부드러운 질문이 허공을 가르고 도착하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유연은 자신에게 들린 그 말이 마치 물속에서 느리게 부유하는 듯한 감각으로 다가오는 걸 느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보겸은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어떤 판단도, 추측도 담기지 않은 채 그저 그녀의 안정을 살피는 듯했다. 그러나 그 따스함 너머에는 말로 다 전해지지 않는 복잡한 감정들이 겹겹이 겹쳐 있었다. 걱정과, 조심스러움과, 약간의 미안함.
“무대 올라가서부터, 누나 표정 계속 굳어있었어. 솔직히… 많이 힘들어 보였어. 그래서 그냥… 좀 도와주고 싶어서…”
그의 목소리는 조심스럽고 낮았으며, 마치 잘못 만지면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것 같은 유리 조각을 앞에 두고 말을 고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유연은 작게 숨을 들이쉬었다. 보겸의 말은 거짓 없이 너무도 솔직해서, 되려 가슴 어딘가가 찌릿하게 저렸다.
보겸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혹시… 나 때문에 더 불편했으면 정말 미안해. 그럴 줄 모르고, 그냥 그 상황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는 그 말의 끝을 흐리며 유연의 반응을 살폈다. 유연은 여전히 대답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감정을 우선순위로 꺼내야 할지조차 판단할 수 없었다. 자신이 괜찮은지조차, 이 순간이 아픈 건지 아니면 후련한 건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단 한 가지 분명한 건 있었다. 지금 눈앞의 보겸이 건네는 말투와 시선에는 어떤 오해도 생기지 않도록 온기가 담겨 있었다는 것. 그는 지금, 어떤 불편함이나 미묘한 감정이 아닌, 오직 유연을 위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유연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가, 아주 천천히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네가 있어서, 그나마 좀 숨 쉴 수 있었어.”
그 말은 진심이었다. 목소리는 떨렸고, 순간적으로 마음의 가장 깊은 부분이 그대로 비쳐 보일까 두려웠지만, 거짓은 없었다. 그 순간, 보겸의 얼굴에 아주 작고 조심스러운 안도의 웃음이 피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무대 위에서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첫 소절이 흘러나왔다.
익숙한 기타 소리. 그들이 함께 수없이 들었던, 함께 따라 불렀던 ‘세 번째 계절’의 노래가 밤공기 사이로 울려 퍼졌다.
“네가 있던 그 계절을 난 아직 다 지나오지 못해서…”
그 가사는, 마치 무대 아래의 두 사람을 향해 직접 말을 걸듯, 조용하고도 단단하게 퍼져나갔다. 유연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다시금 심장이 무너질 것 같은 느낌에 잠시 숨을 멈췄다. 그럼에도, 아주 조금. 정말 아주 미세하게, 보겸 쪽으로 몸을 기대었다.
아직 이 마음이 완전히 봄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누군가 옆에 있다는 건 생각보다 더 따뜻한 일이라는 걸,
그녀는 조용히 깨달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