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지나가니까
파티는 어느새 정점을 찍고 있었다. 사람들이 웃음으로 부풀어오를 수 있는 만큼 부풀어 올랐다가, 알코올과 피곤함에 실려 조용히 가라앉았다. 테이블 위의 그릇들은 절반쯤 비워졌고, 초 한 자루는 바람에 꺼졌으며, 기타 소리도 점점 느슨해졌다. 누군가는 담요를 어깨에 둘렀고, 누군가는 맥주캔을 들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웃음은 남아 있었지만, 웃음 사이사이로 작은 침묵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불빛이 점점 낮아지고, 바람은 더 선선하게 피부를 스쳤다. 무르익은 밤은 이제 천천히 접힐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 틈새, 사라와 남자는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도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 보이지 않았지만, 둘의 움직임은 마치 오래전부터 합의되어 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와인병 너머로 시선을 마주친 순간, 둘은 동시에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말 없이 마당을 빠져나왔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는 사람은 없었고, 굳이 말을 남길 이유도 없었다. 숯불은 아직 희미하게 타오르고 있었고, 바람은 이따금 술 냄새와 고기 향을 밀어내듯 흘러갔다.
“조금 걸을까 해서요.”
그의 말은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떨어졌고, 사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발을 옮겼다. 그 말 한마디로 충분했다. 그들 사이에 더 많은 언어가 필요한 순간은 아니었으니까.
게스트하우스를 지나 바다 쪽으로 이어진 좁은 길을 따라 내려가자, 밤의 바다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는 어떤 인공적인 조명도 닿지 않아, 별빛이 파도에 부서지는 소리를 따라가며 윤곽을 그렸다. 바람은 물기 어린 냄새를 머금고 있었고, 그 냄새는 머리칼 사이로 스며들다 코끝을 감싸고 지나갔다. 파도는 밀려오고 밀려나가기를 반복하며, 짧고 낮은 숨을 내쉬는 것처럼 들렸다.
사라의 발이 모래에 닿았다. 살짝 푹 꺼지는 촉감. 그 위에 다시 발을 딛는 순간,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마치 아주 오랜 시간 이곳에 머물렀던 사람처럼.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맨발로 신발을 벗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냥 그 감각을 발끝으로만 느끼며 걸었다.
남자의 발소리는 일정했다.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하고 느렸지만,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걷고 있었고, 누구도 속도를 조절하려 애쓰지 않았지만, 걸음은 이상하리만치 딱 맞아떨어졌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사라는 아주 작은 놀람을 느꼈다. 누군가와 이렇게 자연스럽게 리듬을 맞춘 적이 있었던가. 말없이 걷는 그 시간 속에서, 감각은 점점 더 예민해졌고, 오히려 마음은 조용해졌다.
“그림 같은 장면은 결국 지나가니까 더 기억에 남는 거죠.”
바다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걷던 중, 남자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사라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바다보다 더 어두웠고, 그 어둠 속엔 묘한 투명함이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스스로 되새기며 말하는 사람처럼.
“그래서 사진을 찍어요,”
사라는 조용히 대답했다.
“지나가더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요.”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지만, 그 말은 그녀 안에서 오래 맴돌았다. 남자의 눈에 짧은 번짐이 스쳤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요히 웃었다. 그것은 공감이었고, 동시에 말보다 더 긴 침묵이었다.
서로를 응시하지 않으면서도, 둘은 서로를 향해 걷고 있었다.
잠시 후, 파도가 조금 더 안쪽까지 밀려왔다. 사라의 발이 미끄러질 뻔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균형을 잃은 몸이 앞으로 쏠렸고, 그 순간 남자의 손이 사라의 팔을 잡았다. 단단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은 손길. 말 그대로 딱 맞는, 그 감촉.
사라는 무심히 “고마워요”라고 말했지만,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그녀는 그 터치가 너무도 짧게 끝났음에도, 심장이 왜 그렇게 조용하지 않은지를 몰랐다. 그리고 그 짧은 접촉 이후, 그들의 걸음에는 미묘한 결이 생겼다. 무언가 바뀌었지만, 설명할 수는 없었다.
사라는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고, 남자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둘 사이엔 파도보다 더 조용하고도 깊은 무언가가 흘러갔다. 그는 이름도, 연락처도 없고, 내일이면 사라질 사람이다. 아마 이 밤이 지나면, 다시는 마주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를 찾아갈 방법도, 기다릴 수 있는 이유도 없다. 그리고 그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꾸 그가 머릿속을 차지한다. 눈에 들어온다. 짧은 말투, 와인을 따르던 손, 모래 위를 걸을 때의 걸음, 짧게 닿았던 체온까지.
'왜 이런 감정이 생기는 걸까.'
사라는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아주 작고 잔잔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다음이 없다는 사실이 지금 이 순간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걸까.’
그녀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바다 냄새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고, 마음은 더 고요해졌다. 그녀는 그와 함께 걷는 이 침묵의 끝에, 어떤 시작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혹은 그저, 이 침묵 그 자체가 하나의 기억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밤은 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밤의 어둠은, 어떤 감정보다 더 부드럽고 단단했다.
모래 위를 조용히 걷던 사라의 발이 천천히 멈췄다. 그녀는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밤바다는 여전히 부드러운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그보다 먼저 고요해지고 있었다. 파도 소리는 어느새 뒷배경처럼 멀어졌고, 하늘 위의 별빛은 이 순간을 위해 모든 빛을 집중하고 있는 듯, 은은하고 맑게 깜빡였다.
남자도 걸음을 멈췄다. 발끝의 모래가 미세하게 밀려나며 작은 소리를 냈고, 그는 조용히 돌아섰다. 사라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엔 어떤 예감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말없이, 숨죽인 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눈동자가, 입술의 움직임이, 그리고 그 모든 것들 너머에 감춰진 마음의 떨림이, 파도보다 더 조심스레 다가오고 있었다.
사라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조금 떼었지만, 곧 다시 다물었다.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한 걸음 내디뎠고, 그 걸음은 무언보다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달빛 아래, 그녀가 가까워졌다. 모래의 결이 발끝에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심장의 박동이 서서히 손끝으로 번져갔다. 가까이 선 남자의 숨결이 피부를 건드리는 것이 느껴졌다. 공기 사이에 떠 있는 체온, 말로 표현되지 않은 수많은 감정들이 그 짧은 거리 안에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사라는 남자에게 입을 맞췄다.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고도 단단하게.
가볍게 닿은 입술이 마치 두 개의 숨이 교차하는 지점처럼 서로를 확인했고, 그것은 시간이 멈춘 듯한 찰나였다. 무게도 없었고, 기대도 없었으며, 다만 지금 이 순간만이 존재했다. 달빛이 둘의 그림자를 하나처럼 이어주었고, 파도는 잠시 숨을 멈춘 듯 조용해졌다.
고요했다.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모든 감각이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입맞춤이 끝났을 때, 사라는 눈을 감고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남자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이마에 손끝을 조심스럽게 가져다댔다. 아주 짧은, 그러나 확실한 닿음. 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 조용한 교감이 둘 사이를 더 단단히 묶었다.
멀리서 바람이 다시 불어왔다. 파도가 철썩, 모래를 부드럽게 때리고 다시 물러났다. 달빛이 일렁이는 수면 위에 찢기듯 흩어지고, 다시 이어졌다.
이 순간은 이름이 없었다. 다만, 기억될 것이었다.
한 사람의 얼굴로, 손끝의 온기로, 조용한 파도 소리로, 그리고 아주 작고 부드러운 입맞춤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