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밤의 끝에서
복도는 깊은 밤처럼 조용했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침묵 속에서도 떨림을 품고 있었다. 사라와 그 남자는 말없이 걸었고, 서로를 바라보지도 않았지만, 손끝이 닿는 순간부터 이미 온몸이 반응하고 있었다. 사라는 걸음을 조심스레 옮겼다. 마치 바닥에 얇은 유리판이라도 깔려 있는 듯 발소리를 죽였지만, 가슴 안의 고요하지 못한 리듬은 더 크게 울렸다.
게스트하우스의 복도는 어두웠다. 벽에 기대 선 야간등 하나가 희미하게 바닥을 밝혔고, 그 빛 아래서 두 그림자가 가늘게 늘어져 있었다. 문 앞에 멈춰선 사라는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이 식은땀에 살짝 젖어 있었고, 잠깐 그 자리에 멈춰선 남자의 체온이 등 뒤로 밀려왔다. 숨이 잠깐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듯 이어졌다.
그리고 조용히 열린 문.
문이 닫히자마자,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둘의 입술은 다시 엇물렸고, 이마와 코끝이 맞닿았으며, 손끝은 서로의 어깨를 천천히 짚었다. 방 안은 어둠으로 가득했지만, 그 어둠은 숨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침묵 속에서 들리는 건 서로의 숨소리뿐, 가쁘고 얕은 숨이 공기를 흔들고, 그 진동이 방의 벽을 따라 퍼져나갔다.
창문 틈 사이로 달빛이 길게 스며들었다. 하얀 커튼을 타고 흐르던 달빛은 침대 끝자락과 바닥의 가방 위로 내려앉았고, 그 은빛 속에서 두 사람의 윤곽이 가늘게 빛났다. 사라는 손끝으로 그의 턱선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단단한 곡선과 그 아래로 흐르는 숨결이 낯설고도 익숙하게 다가왔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고, 이마를 살짝 그녀의 어깨에 기대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마당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는 장난을 치며 소리를 질렀고, 누군가는 깔깔 웃으며 잔을 부딪혔다. 그 소리들은 창밖의 밤공기를 타고 방 안으로 흘러들어왔지만, 점점 멀어지는 듯했다. 마치 이 방은 전혀 다른 세계처럼, 완전히 고립된 우주 같았다.
그의 손이 그녀의 손등을 가만히 덮었다. 사라는 숨을 들이마시며, 그 체온을 기억하듯 쥐었다. 짧은 키스가 다시 이어졌고, 이번엔 눈을 감지 않은 채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깊게 이어졌다. 온 몸이 고요히 떨렸고, 시간은 천천히 녹아내렸다.
침대 위, 놓여 있던 얇은 담요가 미끄러지듯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소리가 작게 방 안을 울렸고, 사라는 그 소리마저 아름답게 느껴졌다. 심장이 뛰는 소리, 숨이 이어지는 감각, 피부에 닿는 숨결 하나하나가 지금 이 순간을 진짜처럼 만들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사라도 그 무엇도 묻지 않았다. 이름도 없고, 내일도 없는 이 순간. 그저 지금, 그 안에 잠겨 있었다.
빛은 아주 천천히, 마치 오래된 필름 속 장면처럼, 커튼의 결을 타고 방 안으로 흘러들었다. 그 빛은 소리도 없이 흘렀지만, 모든 사물 위에 가느다란 존재감을 남겼다. 이불 끝자락을 스치고, 침대 모서리를 지나 바닥의 작은 흔적들을 쓸어내듯 덮고 있었다. 낯설고도 익숙한 아침의 냄새, 눅눅하게 식은 공기, 밤새 남겨졌던 체온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냄새가 뒤섞여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라는 조용히 눈을 떴다. 천장의 나뭇결 무늬가 부드럽게 흐릿했고, 어제의 감촉이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등 아래로 스미는 한기가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이불을 다시 끌어안았다. 무언가 빠져나간 자리, 그것이 그녀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식혀가고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옆자리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베개는 정확히 반듯했고, 이불은 군더더기 없이 접혀 있었다. 그 단정함은 마치 누군가가 아주 조심스럽게,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으려 애쓰며 떠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조심스러움이야말로 그가 정말 여기에 있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처럼 다가왔다.
사라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뻗었다. 아직은 약간 따뜻한 듯한 베개의 결 위로 손끝이 닿았고, 그 짧은 접촉에 마음이 둔탁하게 울렸다. 베개는 말이 없었고, 이불은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 모든 침묵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그의 향은 이미 방 안에서 사라진 듯했지만, 어쩐지 코끝에는 아직도 어젯밤의 숨결이 남아 있는 듯했다. 달빛 아래서 눈을 마주치던 순간, 그 어둠 속의 정적, 그의 손끝이 떨리던 감각, 입술이 닿기 전의 숨죽인 기다림. 그 모든 장면이 마치 잔잔하게 흔들리는 파도처럼, 천천히 그녀의 기억 속에 되감기고 있었다.
사라는 천천히 몸을 말았다. 이불을 끌어안은 채, 조용히 무릎을 당겼다. 무언가가 마음 안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동시에 고요함이 안개처럼 스며들었다.
'왜였을까.'
그렇게 질문이 떠올랐다.
'왜 나는 그에게 마음을 내줬을까.'
그리고 이내, 또 다른 질문이 따라왔다.
'정말 내준 걸까, 아니면… 잠시 스쳐간 걸까.'
마음 한구석에서 차오르는 감정은 복잡했다. 후회라고 부르자니 너무 아름다웠고, 만족이라 하기엔 너무 아팠다. 그 사이 어딘가에 걸린 채, 사라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창밖에서 누군가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누군가 말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 식사를 준비하는 듯한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 세상은 아침을 맞고 있었고, 모두가 어제의 밤을 흘려보낸 듯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사라는 그 속에 온전히 발을 디딜 수 없었다.
그는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연락처도, 약속도, 그 어떤 확신도 남기지 않았다.
단지, 그의 존재감만이 남아 있었다.
마치 짙은 꿈에서 깨어난 직후, 현실보다 더 진짜 같던 그 감각만이 피부 위에 남아 있는 것처럼.
사라는 베개를 끌어안았다. 그 안에는 아무 향도, 체온도 없었다. 그러나 어쩐지 그 속에 말하지 못한 감정이 고스란히 숨어 있는 듯했다. 그가 남긴 가장 큰 흔적은, 어쩌면 그가 사라졌다는 사실 그 자체였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그녀는, 고요히 혼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혼자라는 감각은 결코 텅 비어 있지 않았다.
그는 떠났고, 그녀는 남았다.
그러나 이 방 안의 공기 속에는 여전히,
‘그가 여기에 있었다’는 온기가 머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