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것에 마음이 기울었다 (3)

우연에 우연이 더해졌을 때

by 홍연

마당의 불빛은 밤공기 속에서 은은하게 퍼졌다. 잔잔하게 흔들리는 조명 아래에서 그을린 나무의 향과 고기 굽는 냄새, 숯불의 온기가 공기 중에 부유했다.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퍼졌다 사라지고, 그 틈새로 누군가의 낮은 목소리가 물결처럼 밀려왔다. 잔을 기울이는 손, 불판 위에 지글거리는 고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흘리는 웃음들, 바람에 나부끼는 얇은 옷자락까지—모든 것이 이 밤의 풍경이었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감각은 유난히 선명했다.



사라는 그 풍경 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지만, 마음은 마치 수면 아래에 가라앉은 듯 무겁고 맑았다. 옆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뚜렷하게 의미로 와닿지 않았고, 테이블에 놓인 소주병 라벨을 괜히 한참 들여다보기도 했다. 익숙지 않은 공간, 처음 보는 얼굴들. 모두가 친한 듯 스스럼없지만, 그녀는 어딘지 이방인이었다. 눈웃음을 섞으며 건네는 말들과, 다정한 제스처들이 이어졌지만 사라의 감각은 어딘가 떠 있었다. 마치 이 공간에 자신의 그림자만 내려앉아 있는 듯, 실체 없는 투명한 감정이 주변을 맴돌았다.


그리고 마주앉은 그 남자.



와인을 천천히 잔에 따르고 있던 그는, 마치 모든 것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시끄러운 대화에 끼어들지도 않고, 억지로 웃지도 않았다. 누군가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잔을 들어 반응할 뿐. 그 침묵이 오히려 공간을 더 풍성하게 채우는 것 같았다. 그는 말수가 적은 사람 같았지만, 이상하게 그의 존재가 자꾸만 시야의 중심을 차지했다. 어두운 조명 속에서도 또렷하게 보이는 이목구비, 잔을 기울일 때마다 살짝 구부러지는 손목, 컵 입구를 닦는 섬세한 손짓까지도.



그의 손끝에 와인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조심스레 냅킨을 들어 잔 아래를 닦았고, 사라는 그 동작 하나하나에 시선이 끌리는 자신을 의식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자꾸만 시야가 기울었다. 그가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는 그 짧은 순간조차도 묘하게 시선을 붙잡았다. 단정한 인상 속에 스며있는 어떤 느긋함과 신중함이 그녀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무언가를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의 태도였다.



그는 가끔씩 고개를 들어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고,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사라는 무심한 척 눈길을 돌리며 속으로 당황했다. 그의 시선은 날카롭지 않았지만, 피하지도 않았다. 마치 누구든 그대로 바라보겠다는 듯, 솔직하고 조용했다. 사라는 스스로 그 시선을 기억하려는 자신을 느꼈다. 눈동자의 색, 속눈썹의 방향, 그 안에 담긴 온도까지도.



"여기 앉으신 분은… 여행 자주 다니시나 봐요."



그가 무심한 듯, 그러나 너무 갑작스럽지 않게 말을 걸었다. 사라는 조금 놀란 듯 고개를 들었고, 이어지는 그의 시선에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가끔요. 혼자 떠나는 걸 좋아해서요."


"그렇죠. 혼자가 편할 때도 있죠. 오히려 더 잘 보이잖아요, 풍경이나 사람이나."



그 말에 사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은 짧았지만, 묘하게 자신의 마음을 짚어낸 듯한 울림이 있었다. 익숙한 언어인데도 어딘가 낯선 리듬이었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 고요가 흘렀고, 그 고요가 오히려 더 많은 말을 담고 있는 듯했다. 말의 표면보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 더 많았고, 그것들이 조용히 다가와 그녀의 감각을 흔들었다.



그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그녀는 이 공간이 조금은 덜 낯설게 느껴졌다. 익명의 테두리 안에서 마음의 창이 조심스럽게 열리는 느낌. 이름을 묻지 않고, 과거도 현재도 공유하지 않는 사이. 그러나 묘하게 안정적인 거리감 속에서, 감정의 무게는 천천히 기울고 있었다. 그는 무언가를 증명하려 하지 않았고, 그녀도 자신을 꾸미려 애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무심함 속에서, 더 많은 것이 피어났다.


그가 고기를 뒤집으며 연기 속에서 눈을 찡그렸고, 사라는 자신도 모르게 물컵을 밀어 그의 앞에 놓아주었다. 그는 놀란 듯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해요."



그 짧은 말이 묘하게 오래 남았다. 사라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의 대화에 집중하는 척했지만, 귀끝이 뜨거워지는 걸 감출 순 없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한 번 눌렀고,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올린 채 그를 향하지 않은 시선으로 술잔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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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는 어느새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기타를 꺼내어 조용히 코드를 잡기 시작했고, 다른 이들은 초가 켜진 작은 조명 주위를 돌며 사진을 찍었다. 와인의 병은 몇 개째였는지 모르겠고, 시간도 흐릿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불빛 너머 어둠은 점점 더 짙어졌고, 숯불은 타오르다가 점점 고요해졌다. 그 속에서도 웃음은 계속 퍼지고 있었고, 사라는 그 안에서 차츰 녹아들었다. 허물어지고, 다시 조용히 세워지는 느낌. 말보다 감정이 먼저 도착하고, 시선보다 기류가 먼저 움직이는 밤이었다.

그러던 중, 사라는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다 무심코 말했다.



"아까, 저 그 쪽 바닷가에서 봤어요. 카메라를 들고 서있는 모습이요. 말도 안 되게 멋지어서, 진짜. 그림 같았어요."



그 말에 사람들은 웃으며 너도 나도 여행지에서 마주친 이상형 썰을 풀기 시작했다. 사라도 그 속에서 함께 웃었다. 그 말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채. 별 의미 없이 떠넘긴 말, 흐르고 사라질 농담 같은 문장.

하지만 잠시 뒤, 남자가 조용히 사라에게 다가와 와인을 따라주며 말했다.



"사실 나도 봤어요"



사라는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은 장난스럽지도, 무심하지도 않았다. 마치, 그 말이 마음 어딘가를 건드린 듯한 표정. 조심스럽고, 진심 어린.



"기차 안에서요. 제 맞은편 창가 자리에 앉아서 창 밖을 보면서... 뭔가 생각에 잠겨 계셨는데, 꼭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잠시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잔을 들고 천천히 입을 맞췄고, 불빛 너머 별이 반짝였다. 그 순간, 밤공기에서 어딘가 다른 온도가 느껴졌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서도, 마치 이 장면에 존재하는 건 둘뿐인 것처럼 느껴졌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생긴 비밀 하나.


그 밤, 둘은 서로의 이름도 연락처도 몰랐지만, 공통의 기억 하나를 갖게 되었다. 누가 먼저 기억할지 모를, 한 장면. 그리고 그 장면을 함께 떠올릴 수 있는 단 하나의 사람.

그건 그 밤의 규칙이 허용한, 가장 작은 반칙이었다. 그러나 둘은 그 반칙을 마음 깊숙이 간직하게 될 것임을, 아직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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