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것에 마음이 기울었다 (6)

잔물결의 페이지

by 홍연

사라는 천천히 옷을 입었다.


햇살은 여전히 느릿하게, 커튼 틈 사이로 쏟아지고 있었고, 방 안은 시간이 멈춘 듯 정적에 잠겨 있었다. 침대에 앉은 채 한참을 창밖을 바라보았다. 새벽녘의 그 차갑고도 뜨거웠던 순간들이 이제는 마치 오래전 일처럼 흐릿해져 있었다.


그는 없었다. 그 사실이 너무 조용하고도 당연하게 그녀의 하루를 다시 시작하게 했다. 사라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게스트하우스의 복도는 아침 햇살에 씻겨 한결 밝아져 있었고, 몇몇 방 앞에는 누군가 마신 와인 병과 컵이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었다. 그 평온한 흔적들 사이로 사라는 무심히 걸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다시 일상의 리듬으로 스며드는 척.



마당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발을 디뎠을 때, 따뜻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어제와 똑같은 공기, 똑같은 햇살. 그러나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마당에는 이미 몇몇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누군가는 얼어 있는 아이스커피를 들고 웃었고, 누군가는 방금 세수를 마쳤는지 머리를 닦으며 신문을 펼쳤다. 조용한 대화, 잔잔한 웃음, 조식으로 내어놓은 빵 굽는 냄새.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했고,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아니, 바라볼 필요조차 없었다. 사라는 마당 끝에 놓인 빈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눈앞에 놓인 잔디는 초록빛으로 반짝였고, 테이블 위에 흩어진 크루아상 부스러기와 커피 얼룩, 누군가 흘린 설탕 가루까지—모든 것이 묘하게 생생하게 눈에 들어왔다. 마치 감각만 지나치게 예민해진 사람처럼.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주변의 풍경을 천천히 훑었다. 누가 어제 그 파티에서 함께 웃었고, 누가 기타를 치던 사람이었는지 알 것도 같았지만, 전부 다 멀리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방금 전까지 그녀의 삶에 닿아 있던 어떤 진심은, 이 아침의 평온 속에 감쪽같이 녹아 있었다.



그는 어디에도 없었고, 누구도 그에 대해 묻지 않았다. 아무도 이상해하지 않았다. 그녀 혼자, 그가 여기에 있었던 밤을 알고 있었다. 그 짧은 틈새처럼 반짝였던 밤을.



사라는 괜히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한 번 덮었던 그곳. 햇살에 익은 피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뽀얗게 빛났고, 체온도 감촉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작고 조용한 떨림이 남아 있었다. 그것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녀 옆 테이블에 앉으며 떠들기 시작했다. 어제 본 해변이 어땠는지, 오늘은 어디를 갈 건지, 누가 밤새 코를 골았는지. 웃음이 터졌고, 빵이 찢어졌고, 커피 잔이 부딪혔다.



사라는 그 모든 소리 속에서 웃지 않았다. 하지만 입꼬리를 조심스럽게 올렸다.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이질감이 마치 자기만의 그림자처럼 따라붙었지만, 그것까지도 이제는 받아들이려는 듯.



‘나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기로 했잖아.’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은 맑았고, 새들은 바쁘게 날아다녔다. 어떤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녀는,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다시 찾으려 하고 있었다. 어쩌면,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아니, 모든 것을 품은 사람처럼.



방으로 돌아온 사라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방 안은 떠날 준비가 끝나가는 냄새로 가득했다. 여기저기 펼쳐져 있던 옷가지들은 차례차례 접혀 가방 안으로 들어가 있었고, 화장대에 놓여 있던 작은 핀과 핸드크림도 이제는 주머니 속으로 감춰졌다.



짐을 다 싼 사라는 방 한가운데에 한참을 서 있었다. 가방은 침대 옆에 조용히 놓여 있었고, 커튼은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창 너머로 비치는 햇살은 방 안의 벽지에 맑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 빛을 응시하지 않았다. 무언가 빠져나간 자리는 정리해도 쉽게 덮이지 않았다. 정돈된 이불, 깨끗이 비운 서랍, 차분한 손길로 접은 옷들. 그러나 마음 안에는 여전히 어딘가 풀리지 않은 매듭 하나가 느슨히 남아 있었다.



사라는 가방을 메고 문을 나섰다. 복도는 조용했고, 마당에서는 누군가 기타를 조용히 조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많은 여행자들이 떠났고, 남은 이들은 한낮의 햇살 아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녀는 발걸음을 공용공간 쪽으로 옮겼다. 그곳엔 커다란 창이 달린 거실이 있었고, 창가에는 낮은 테이블 하나가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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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에, 익숙한 방명록이 얌전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겉표지는 누군가의 손때로 매끈하게 닳아 있었고, 구석엔 커피 얼룩이 희미하게 번져 있었다. 사라는 조심스럽게 그 앞에 앉았다.



앉는 순간부터 마음속 어딘가에서 묘한 울림이 일었다. 어제와 오늘, 그 사이에 놓인 어떤 장면 하나를 놓고 오지 않은 듯한 기분. 무언가를 마무리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펜이 담긴 종이컵을 옆으로 밀어두고 노트를 펼쳤다. 처음 몇 장은 밝은 글들로 가득했다.



“고양이 너무 귀여웠어요.”



“여기 와서 마음이 맑아졌어요.”



“다음엔 친구들과 다시 올게요!”



사라는 가볍게 웃었다. 이런 글들 사이에 자신이 무언가를 남기는 게 맞는 걸까,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곧,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던 손이 멈췄다.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밤은,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걷게 만든다.
멈추고 싶은 마음보다, 그냥 더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 더 앞서는 밤.”



사라는 그 페이지 앞에서 손끝을 멈췄다. 문장은 단정했고, 글씨는 크지 않았다. 잉크가 약간 번진 흔적은 있었지만, 글씨체는 조심스럽고 섬세했다.



그녀는 문장을 소리 없이 한 번, 그리고 다시 한 번 읽었다. 그 문장은 그와 닮아 있었다. 짧지만, 그 밤의 감정들을 어디까지나 흘려보내듯 담고 있는 듯했다. 그의 말투, 눈빛, 걸음 속 조심스러움과 비슷한 결을 지닌 문장.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곳을 거쳐 간 또 다른 누군가가 남긴 말일 수도 있었고, 그가 아니라면 어쩔 것인가. 그가 맞다면 또 어쩔 것인가.



사라는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한동안 그 문장을 내려다보다가, 펜을 들어 자신의 페이지를 열었다. 그리고 천천히, 가장 말하고 싶은 방식으로 써내려갔다.



“파도는 늘 제자리로 돌아오지요.
하지만 그 순간의 물결무늬는, 단 한 번뿐이었어요.
그래서 나는 그 밤의 흔적을, 잊지 않기로 했어요.”



그녀의 문장은 그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 밤을 걸었던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그 물결에 잠시 몸을 맡겼던 순간에게 남기는 기록이었다. 그러나 언젠가 누군가 이 글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 또한 알아챌지도 모른다.



그와 마주했던 침묵 속의 떨림을,

파도가 그려놓고 간 가느다란 흔적들을.



사라는 노트를 덮으며 숨을 들이쉬었다. 공용공간엔 느릿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온기가 채워지고 있었다. 햇살은 이제 정오 가까운 각도로 창을 타고 흘러들고 있었고, 마당에서는 누군가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멀리선 누군가 포터를 불러 짐을 부탁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 가방을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 그 노트에 손바닥을 올렸다. 그 위에 남아 있을 누군가의 체온이 사라지기 전에.



떠날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밤의 흔적을 그 자리 어딘가에 조용히 남겨두고 나설 준비가.



그리고 문을 열고, 나아갔다.

그 문장을 남기고, 이 공간을 등지면서도 그녀는 한순간도 그 밤의 파장이 멈췄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저, 다음 장면을 살아가는 것뿐.


잊지 않고, 묻어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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