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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야 잘 가라~~

EP. 11 굿바이 캠프 험프리스

by happy daddy

#1. 일생생활

교육생의 일상생활

KTA에서의 3주 동안 자대배치의 큰 이슈만 없었다면 다른 생활은 크게 만족할 만하다.

카투사 훈령병에게는 매달 지급되는 보급품과 일반 육군과는 다르게 Hair cut 쿠폰이 2장이 지급되는데 그걸 가지고 본인이 원하는 날과 시간에 바버샾이나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를 수 있다. 논산에서는 조교가 깎아주거나 동기중 몇 명을 교육시켜 깍새로 불러 일명 바리깡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자체적으로 알아서 하지만 여기는 진짜 모든 생활이 미군과 동일하게 한다. 미군은 각자 월급으로 알아서 비용을 지불하고 자르고 우리는 쿠폰을 매월 2장씩 지급받아 그걸로 머리를 정돈한다.


처음 KRTC에 와서 그때도 2장을 받았는데 처음에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 하고 놀랐다. 이때는 단체로 토요일인가 샾에 갔는데 (미용실인지 바버샾인지 30년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머리를 자르시는 분이 족히 5~7명 넘게 보였고 우리 기수 전체 약 120명이 순번을 기다려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대기했는데 그 분위기가 사뭇 논산과 다르고 사회에서도 달라 뭔가 달달하고 향기롭고 음악도 틀어져 있어 신세계를 경험한 것 같았다.

헤어컷쿠폰.png

영어로 KATUS HAIRCUT COUPON으로 되어 있고, 월과 년도가 표시되어 있고 제대까지 매월 2장씩 받는다. 물론 선임 중에는 사제 미용실에서도 자르기도 해서 쿠폰을 후임들에게 선물로 주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사제에서 자르는 게 모양새는 더 나오기 때문이다.)


누군가 군대는 줄을 잘 서야 한다고 말했고 나 역시 그게 중요하다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아 느꼈다.

여기서도 대다수 동기들은 여자 미용사에게 머리를 자르려고 일부러 그쪽으로 줄을 서면 교관들이 한 번씩 다시 줄을 정리해주기도 하고 일부 동기들은 남자 미용사에게 (그때도 아저씨 같은 분이 하셨다) 자기 머리를 맡길 때 무슨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표정을 보이는데 그 당시도 웃기지만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웃기다.


참고로 난 인위적으로 줄을 옮기지 않고 아무런 노력도 안 했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여자 미용사 앞에 자리배정이 되어 남자에게 배정된 동기의 부러운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나중에 자대 가서도 매달 받는 2장의 쿠폰으로 어느 바버숍이 트렌드(?)를 잘 따르는지, 세련되게 잘 깎아주는지 그게 관심사라서 부대에서 거리가 멀더라도 (내가 있는 캠프도 순환버스가 다니고 게이트부터 부대까지 10분 정도 타고 들어가야 한다.) 일부러 찾아가서 깎은 적도 있다.




KTA에서는 행군이나, 각개전투 같은 과격한 훈련이 없는 대신 영어 교육과 P.T Test가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무난히 할 수 있는 수준이고 KRTC에서 500 지역에서 받았던 원산폭격도 나름 컸다고 안 받는다.

다만 군화 광내는 것은 정말 얼굴이 비출 정도로 광을 내야 Inspection에서 통과가 될 정도로 엄격하게 봤다.

교관들이 광을 내는 방법도 알려줬다. 물광을 이용하라고 구두약과 물을 섞어 헝겊으로 (구두 닦는 헝겊이 제공된다. 진짜 미국은 천조국이다......) 닦아 윤기를 내야 한다고.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다, 생각보다 광이 잘 안 난다. 미군 군화는 소프트해서 한국 군화처럼 광이 쉽게 나지 않는다. 아무리 시간을 투자해도 생각보다 광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러나 2,3주 지나고 나니 정말 군화가 반짝반짝거리고 한번 광을 내니 나중에는 조금만 닦아도 이젠 제법 광이 오래갔다.

좌측이 한국군화 우측이 미군군화 [1995년 기준]



(공부, 운동도 마찬가지 처음에는 실력이 안 느는 것처럼 보이고 아 이게 아닌가 싶다 공부는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포기하기가 쉽지만 역시나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확 느끼게 된다. 그것이 운동이 되든 영어가 되든 어떤 것인지 끈기를 가지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덧 원하는 수준으로 성장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못 느낀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않고 인내로 감당하다 보면 어느새 실력은 따라오게 된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오죽하면 우리끼리 자조 섞인 말로 KTA에서 가장 큰 힘든 것을 뽑으라 하면 군화 광내는 것과 책 봐이다.

책 봐는 엎드려뻗쳐의 변형 스타일로 두 팔은 턱을 괴고 두 팔꿈치는 바닥에 두고 다리는 일자로 쭉 뻗어서

마치 내 앞에 책을 읽는 것 같은 자세를 말하는 것인데 이게 생각보다 팔에도 무리가 가고 균형을 잘 잡아야 해서 힘들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자세를 통하여 얼차려 하기에는 약하고 체력단련이라 하기에도 애매하고 하여튼 책 봐는 자기 전 점호 시간에 자세 불량이나 청소 불량 시 교관으로부터 자주 지시받았다.


#2. 이번에 불리지 않은 사람은...

자대배치를 호명받다

드디어 자대배치의 시간이 왔다. 모든 교육생들은 야외 연병장에 집합하였다.

이윽고 서류 뭉치를 든 교관이 한 명씩 호명하여 불려 나갈 때마다 정해지는 것이다.

순서는 먼저 부대 이름을 말하고 이름을 호명하는 식이다. 우리끼리 각자 희망하는 부대가 있는데 공통적으로는 '용투사' - 용산, 그리고 '19 지원사'- 대구, 평택이고 나는 집이 서울이기 때문에 서울 쪽을 선호하여 (용투사는 극히 일부라 기대도 안 했다.) 평택이나 대구 말고는 차라리 의정부 쪽이 더 낫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한 명씩 한 명씩 호명되어 불려 나가고, 내가 기대했던 부대는 아직 안 나오고 이미 용투사와 19지원사쪽은 다 찬 것 같았다. 헌병 쪽도 나온 것 같고, 통신 여단 쪽도 나온 것 같고 아직 절반 정도가 남은 것 같은데 한참 서류를 보고 호명했던 교관이 갑자기 보고 있던 서류를 내리더니 남은 교육생들을 다시 오와 열을 맞추라 하셨다.


앞서 논산에서 경험을 비추어 보면 마지막까지 이름을 불리지 않은 훈련병들이 결국 카투사에 합격된 사례가 있어 이번에도 나는 그 경험을 믿고 일말의 기대를 품고 분명 나를 위한 파라다이스 자대가 남았을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기다렸다.


나는 이제 몇 안 남았으니 흐트러진 줄을 다시 세워 질서를 유지하고 계속 이어나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지금 남아 있는 교육생들은 전부 2사단이다. 응? 뭐라고? 방금 뭐?


2사단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미 제2보병사단 (사단구호 : Second to None) 2등은 없다, 세계 1등!!!

미 8군 예하 부대 중에 보병사단으로 편제되어 있지만 주한미군의 핵심적인 전투부대로서 TV로만 봤던 각종 첨단무기와 M1A1 에이브럼스 탱크부대, 험비, 아파치 부대, 브래들리 장갑차, M109A6 팔라딘 자주포 등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전력의 기갑부대와 보병부대가 있는 2사단이다. (2사단은 경보병 사단이라 하지만 기갑여단, 포병여단, 아파치대대 등 보병화력뿐 아니라 기계화 화력도 엄청나다.)


카투사는 보통 느긋하게 미군과 행정실에서 컴퓨터 키보드나 두드릴 것 같고 그들과 함께 스테이크 썰고 커피 향 나는 사무실에서 편하게 근무할 것 같다는 환상을 가지지만(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만) 오히려 한국군 일반부대보다 더 빡센곳이 미군전투부대이고 거기서 함께 군생활 한다는 것은 제대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절반정도 나와 동기들은 2사단에 배치되었고 각 주특기별 각 부대는 사단에 가서 (터틀팜이라는 곳에서 부대 배치가 됨) 1주일 정도 대기하면서 또 뿔뿔이 흩어진다.


남은 동기생들을 전부 모으더니 너희는 2사단이다 모두 파이팅을 외치라 한다. 교관들도 아는 것이다. 그래서

위로가 될 수고 힘내라 하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먼저 배정받은 동기들이 위로(?) 해주고 사나이답게 잘해보라고 덕담을 하는데 그게 무슨 덕담처럼 들리겠나? 그렇다고 그들이 무슨 죄를 지은 것은 아닌데 말이다. 친하게 지냈던 동기는 대구로 간다고 한다. 이제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서로 친한 동기끼리는 캔틴에 가서 의미 있는(?) 저녁식사로 라면을 땡기고, 또 자기 집주소나 이메일 주소 그리고 삐삐 번호를 교환하면서 휴가 나올 때 꼭 연락해서 만나자 약속을 한다. (근데 그거 뭐 쉽겠나. 각자 자대 배치되면 졸병이고 또 휴가 나오면 군대 친구를 누가 만나겠나)


일부 동기들은 19 지원사 평택 캠프 험프리로 배치가 되어 선임들이 그냥 도보로 와서 더플백을(더블백이 아닌 더플백이라 한다.) 메고 이동하는데 남들은 평택도 위치가 좋고 나름 후방부대라 좋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는 별로였다. 일단 나는 새로운 것을 좋아해서 거의 7주간 있었던 험프리스를 떠나보내고 싶었고 또 평택은 내가 사는 서울(당시 KTX가 없기도 해서 기차 아니면 고속버스를 타야 했다.)과 거리가 멀어 보였고 오히려 의정부, 동두천은 전철로도 갈 수 있으니 그쪽이 더 나아 보였다. (실상은 의정부, 동두천은 2사단이 있는 곳으로 훈련도 많고 군기도 빡세다 나는 단순히 집과의 거리가 가까운 것만 선호했다. 용투사는 진즉에 포기했으니)


2사단에 배치된 동기생들은 명진버스를 타고 평택을 출발하여 동두천까지 약 3시간여 이동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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