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 다양성을 일치시키는 규정과 기준
내 나이 대부분 그랬듯이 난 밖으로(해외)를 경험하지 못했다. 오히려 여행이든 살다왔든
한 번이라도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 대단한 시절에 살았다. (격동의 70年代生)
그런 내가 22살 군 입대를 통하여 미군과 함께 군생활 하는 것은 기존 가치관과 세계관의
충돌 그리고 확장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이야 핸드폰에 구글검색을 통해 모든
정보를 수용할 수 있지만 1990년대만 해도 이제 막 전국적인 인터넷이 보급되고 붐을 일으키는
시기라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는 아버지께서 영어를 잘하셔서 외국 손님들도 스스럼없이 만나시고 그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사진으로도 보고 또 직접 부딪혀도 봐서 크게 쫄지는(?) 않았다.
또한 군대 오기 전 이태원의 편의점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수많은 외국인과 미군들을
접해본 가닥이 있었는데 대부분 쉽게 볼 수 있는 백인 그리고 흑인들이었다.
1995년 12월 자대배치 후 처음으로 카투사 교육대가 아닌 실제 근무하는 미군들과 함께 약 120~130명가량
되는 한 포대(중대)에 속하면서 처음에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지냈던 것 같다.
내가 속한 Section이 Orderly Room이라 전입, 전출하는 부대원들의 서류도 챙기면서 또 다른 Section
Chief에게도 알려줘야 해서 포대 전체 인원을 직접 챙기게 되었고 다양한 파트의 사람들을 만났다.
미국은 50개의 주(States)가 연합하여 만들어진 국가로 The United States America다.
인종은 황인/흑인/백인 모두 있고 여러 나라에서 이민을 오는 민족들도 많다.
흔히 아는 유럽계(유럽계에도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열거하면 많다.)
그리고 히스패닉계(스페인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멕시코, 도미니카 등이 있고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브라질은 또 라티노라고 한다.) 또한 아프리카계, 중동계도 있었다.
아시아계는 중국계, 일본계, 필리핀계, 한국계 등이 대표적이다.
놀랍게도 위에 말한 민족은 내가 군에서 만났거나 경험했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다.
같은 백인, 흑인이라 해도 처음에는 잘 모르지만 이름도 약간 다르고 발음도 좀 다르고, 외모도 좀 달라 보이는 게 짬이 찰수록 느껴졌다. 일례로 이태리계 미군을 봤는데 외모가 정말 수려하고 금발에 어두운 눈동자였고
같은 흑인이라도 본토 흑인과 아프리카계 흑인은 또 달랐다. (나는 인종과 민족을 차별하는 것이 아닌 그저
내가 느낀 점을 토대로 설명) 미묘한 발음차이도 있고 외모의 차이도 인정하면서 참 세상은 다양하고
다양한 민족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느끼게 되었다.
미국이란 나라도 그런 것 같다. 50개 주의 연합국가, 남부와 북부가 다르고 또 동부와 서부가 다르고
민족과 민족이 다르다. 이런 다양한 민족이 한 국가의 일원이 되고 그래서 법과 기준이 엄격하게 적용
되고 경찰권력이 막강해지는 것을 그때 깨닫게 되었다. 각자 생활양식이 다르고 판단 기준도 다르고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 차이 등) 저마다의 목소리가 높아져서 사회적으로 통일이 되기 어렵기 때문에
법치국가로서 강력하게 규정을 시행하는 것 같다.
이런 사상과 양식이 모든 부분에 놓여 있다.
한 예로 미군들과 함께 같이 운동을 할 때가 있는데 가장 많이 하는 게 농구, 배구, 야구 그리고 축구이다.
농구를 할 때는 미군들이 크도 크고 체격도 좋아서 정말 KBL에서 보는 용병이 뛰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또 종주국이고 하니까 수긍하고 받아주며 운동을 한다.
그런데 축구를 할 때는 그래도 한국이 그 당시만 해도 월드컵 3 연속 본선 출전이라 나름 축구부심이
있어 미군과 같이 할 때 은근 자부심과 그들을 한수 아래 깔보는(?) 마음도 있었다.
경기를 하다 보면 특히 군대 축구를 하다 보면 정해진 포지션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닥공(닥치고 공격)
모드로 그냥저냥 필드를 맘껏 우르르 몰려다니며 욱여쌈으로 골을 넣는 거지.
근데 흑인 상병이 계속 Formation을 지키라고 소리 지른다. 네 위치가 어디냐? 왜 안 지키고 다른 곳에
있냐? 그야 공이 저쪽으로 가고 수비가 뚫렸으니 커버하러 갔지 그렇게 대답하면 그래도 자기 위치를
고수해 가며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답답하기도 했고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다.
그는 자기의 위치를 고수하는 것이 규칙이고 합의된 플레이기 때문에 거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으로 나한테도 말을 한 것이다.
또한 훈련장에 가서도 FM대로 (야전교범 - Field Manual) 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뭐든지 그렇다 교범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교범에 기록된 대로 해야 한다. 이게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규칙과 기준대로 하는 게 뼛속 깊게 자리 잡은 이유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다양한 민족의 다양한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으니 사회적으로 합의하고 도출한 결론은 그것이 나의 기준과 다르다 할지라도
존중해지고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지금의 문화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런 문화가 어렸을 때부터 자리 잡고 있으니 개인주의라도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또 피해를 받고
싶지도 않아 하는 게 이들의 양식인 것 같았다. (精은 좀 떨어져도......)
우리나라는 단일민족, 단일국가를 강조하고 마치 그것이 순결하고 전통 있고 뭔가 우월적인(?) 선민의식
이 있는데 미국은 다양한 민족과 다양한 국가에서 이민 온 사람들로 구성된 연합국가로 가치관 자체가
다른 것 같다.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타 문화를 받아들이고 남들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아주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이른바 열린 사고방식과 열린 행동들이 기본으로 녹아 있다는 것이다.
뭐가 더 좋고 우월한지의 차이는 논할 필요가 없지만, 새로운 경험,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는 다양한 민족, 다양한 사람의 케미가 더 좋아 보이진 않을까 한다.
어쩔 때는 사람 구경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는 경우가 많다.
머리카락 색깔, 눈동자 색깔, 피부, 체격, 발음, 행동 모든 게 전부 다르고 차이가 있어서 만나는 사람마다
나와 다른 사람이라 (물론 한국인끼리도 다른 사람이지만) 그 나라와 민족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많아 호기심이 많았던 나로서는 늘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