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동유라는 아이

시켜서 하는 건 싫어.

동유라는 아이를 만난 건 2년 전이다.

그 당시, 동유는 3학년이었다.

동유의 첫인상은 퍽 강렬했다.

코 위까지 올려 쓴 마스크, 도전적인 눈빛, 거무튀튀한 피부 그리고 허스키 한 목소리까지 포스 작렬이었다.

동유는 첫 수업부터 범상치 않았다.

아무리 공부가 싫어도 첫 수업은 대부분 협조적이다.

그러나 동유는 첫 수업부터 시간을 깎아달라고 하지 않나, 물 마시고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질 않나,

공부 잘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장난을 쳐서 수업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동안 수백 명의 아이들을 만나봤지만, 동유의 캐릭터는 유니크했다.


나는 슬슬 호기심이 생겨서 동유를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

아주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내가 지켜본다는 것을 느낀 동유는 열공하는 척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문제집 여러 장을 넘기는 것이었다.

내 경험상, 이런 아이는 공부가 어려워서, 공부를 안 하는 경우가 많았다.

동유가 딱 그런 스타일이라고 지레 판단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유가 푼 수학문제집을 채점해 보았다.

그 순간, 나는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충격을 먹었다.

동유가 푼 모든 문제 위에는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속으로 생각했다.

'동유는 공부를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서, 안 하는구나!'

나는 경험상, 공부를 잘하면 재미있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한다는 프레임에 갇혀있었다.

동유는 나의 프레임을 보기 좋게 깨부순 아이였다.

하루이틀 동유와 수업을 하면서, 간간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동유는 굉장히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아이였다.

누가 시켜서 하는 아이가 아닌, 스스로 하는 일에 만족감과 성과가 월등한 아이였다.

하지만, 동유엄마는 굉장히 FM적인 마인드의 소유자였다.

동유를 믿지 않았다.

공부방에서의 1시간 수업은 50분이 원칙이다.

동유엄마는 막무가내로 60분 수업을 원했다.

너무나 강경하였기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동유 엄마의 예상과는 달리, 동유는 다른 아이들보다 10분을 더 수업한다는 것 자체에 엄청난 부담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공부를 뺀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

어떻게 시간을 때울 것인지에만 몰두했다.

특히, 다른 아이들보다 10분 더 공부한다는 것에 대해 굉장한 억울함과 분노를 느꼈다.

가르치는 나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너무나 힘들었다.

나는 동유가 그만둘 것을 불사하고 하고 동유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동유어머니, 잘 지내시죠.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한 가지 여쭤볼게요. 동유가 집중해서 효율적으로 공부하기를 원하십니까? 대충대충 오랜 시간 공부하기를 원하십니까? 60분 동안 그냥 시간만 때우기를 원하십니까?"

한참을 뜸을 들인 동유엄마는 "집중해서 공부하기를 원하죠."라는 마뜩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그래도 60분 꽉꽉 채워서 수업을 해주세요."라는 경직된  말투와 함께 통화는 마무리되었다. 나는 참 속상하고 답답했다. 시멘트처럼 굳어 버린 동유엄마의 고정관념과 편견이라는 벽이 너무나 두껍게 느껴졌다.

사람은 많은 경험을 겪으면서 누구나 자기만의 고정관념과 확증편향을 가지고 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경험을 쌓으면서 이 철옹성은 더욱더 강해지고 굳건해진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나의 생각이 100퍼센트 맞는 법은 없다. 사람은 불완전하기에 언제나 나의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마인드가 탑재되었을 때, 사람은 성장할 수 있다. 나이가 익어갈수록 나의 신념이 정말 맞는지 점검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와 같이 공부를 뺀 나머지에 집중하는 동유와의 수업을 힘들게 이끌어 가고 있었다.

그 순간, 동유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늘부터 동유 수업시간은 최대 30분으로 해 주시고요. 문제집 3장 이상을 풀면 끝내주세요."라는 상상도 못 한 멘트를 들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연락에 "네... 네."라고 어버버 하게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동유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니, 동유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곧바로 동유의 눈빛이 바뀌며 순식간에 7장의 문제집을 풀어버렸다. 사실, 나는 '오늘은 어려운 내용인데, 3장을 풀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었다. 동유가 집중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동유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짧은 수업시간이라는 것에 상대적 우월감과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엄마가 자신을 신뢰한다는 사실에 자존감이 급상승했다.

나 또한, 내 말을 믿어 준 동유엄마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누군가를 믿고 맡긴다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을 살리고 성장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믿어주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하율이라는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