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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석이라는 아이

원석이 보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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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하루 앞둔 저녁시간에 갑자기 공부방 현관문이 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올 아이가 없는데. 이상했다. 거울에 비친 실루엣을 보니, 작년에 그만둔 원석이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급하게 마중을 나갔다. 그 새 더 키가 자란 원석이는 185cm의 건장한 청년이 되어있었다. "원석아 잘 지냈니? 무슨 일 있니?" "선생님도 보고 싶고 추석이라서 인사드리러 왔어요." 순간  마음 저 깊은 곳에서 기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기억이 생생하다. 엄마 손에 이끌려 온 원석이는 7살 유치원생 답지 않은 키와 체격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던 원석이는 언뜻 보면, 3학년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엄마, 아빠의 유전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았다.

원석이의 존재는 원래 알고 있었다. 원석이 누나가 공부방에 다니며 가끔 원석이 얘기를 했었다. 유치원생 동생이 있는데 한글도 잘 모르고 수학도 잘 못한다고... 20년 넘게 공부방을 운영했지만, 우애 좋은 남매, 형제, 자매는 가뭄에 콩나 듯했다. 그래도 원석이  남매는 우애가 좋은 편이라 느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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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실, 우리 공부방에서는 초등학교 2학년부터 수업을 했었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1학년에 대한 수업문의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너무 어린아이는 여러 의미에서 50분 수업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사회성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본인 공부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수업 분위기를 흐릴 수 있다. 당시에 나의 아들들이 8살, 5살이기에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즈음에 경쟁 공부방이 다수 생기면서 많은 아이들이 떠난 상태였다. 수입에 대한 위기감을 느낀 나는 더운밥 찬 밥을 가릴 처지가 못되었다.


그렇게 원석이와의 수업은 시작되었다. 유치원에 다니던 원석이는 내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데리러 갔다. 공부방에 아이들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빠를 맞이하 듯, 밝게 웃어주는 원석이가 한없이 귀여웠다. 원석이가 오는 시간에는 다른 학생들이 거의 없다 보니, 1대 1  과외처럼 수업이 이루어졌다. 원석이와 첫 수업을 하고 고민이 많아졌다. ㄱ,ㄴ,ㄷ,ㄹ... 을 헷갈려했다. 내일이면 알겠지. 내일모레면 알겠지. 속절없이 시간은 흐르고 나의 인내심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무리 나빠도 이렇게 나쁠 수가 있을까.'라는 나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게 진전 없는 수업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을 무렵, 나는 수업방식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5살짜리 둘째 아들의 한글교재를 챙겨 와서 수업을 하기 시작했다. 화려한 그림과 쉬운 내용이 원석이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 같았다. 특히, 동물낱말카드에 큰 관심을 보였다. 동물에 관심이 많았던 원석이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났다.


재미있는 교재로 수업을 하니, 원석이의 한글과 수학실력은 날이 갈수록 쭉쭉 성장했다. 더불어 원석이 엄마도 매일매일 지극정성으로 원석이의 숙제를 챙겨주셨다. 덕분에 원석이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완전히 떼고, 수학실력도 초등학교 2학년 수준이 되었다. 처음 원석이의 모습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공부 재능을 타고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분명 보람된다. 그 보다 더 보람된 일은 공부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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