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원정야구직관을 하기 위해서 잠실야구장으로 출발했다. 150킬로 남짓이지만 3시간 가까이 걸렸다. 역시 서울은 서울이다. 사람과 차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항상 놀랍다. 겨우 공영주차장에 들어섰고 운 좋게도 마지막자리에 주차할 수 있었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첫 원정야구직관이라는 설렘으로 피곤치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는 게 아닌가. 뭔가 느낌이 싸했다. 제발 우천취소가 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바랬다. 신의 장난이었나 싶게 비는 그치고 하늘은 맑게 개였다. 높은 습도와 태양의 열기로 인해 숨쉬기도 힘들었다.
한화이글스의 승리를 상상하며 우리는 잠실야구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15분쯤 걷다 보니, 저 멀리 잠실야구장이 보였다. Tv에서만 보던 곳을 직접 보다니. 그 규모가 생각이상으로 크고 웅장했다. 어렵지 않게 자리를 잡고 얼음물을 들이키며 경기시작을 기다렸다.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고, 팽팽한 투수전으로 경기는 흘러갔다. 한화의 선발투수 바리아와 두산의 선발투수 곽빈은 명품투수전을 선보였다. 페라자의 홈런과 쥐어짜기 점수가 나면서 한화는 4대 2로 8회 초까지 앞서나갔다.
한화응원단과 팬의 분위기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거의 한화의 승리가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디만 저력의 두산은 역시 만만치 않은 팀이었다. 한화 불펜투수 김서현에게 볼넷 3개를 얻어내고 주현상을 두들겨서 4 득점을 순식간에 쓸어 담았다.
그 순간 한화응원석은 얼음이 되어버렸고 두산 응원석은 활화산이 되어버렸다. 우리 가족은 거의 99.9퍼센트 한화가 역전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두산에는 리그 최고의 마무리 김택연이 있었기에. 어렵게 어렵게 8회 말이 끝나고 9회 초 한화의 마지막 공격이었다.
사실, 크게 기대가 안되었기에 응원도 하는 둥 마는 둥하고 언제 집에 갈지 저울질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리그 최고의 수비를 자랑하는 두산 외야진의 실책으로 노시환이 2루에 떡하니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곧바로 김태연의 안타로 노시환은 3루로 진루했고, 유로결의 내야땅볼로 결국 노시환은 홈을 밟았다. 갑자기 희망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기세에 올라탄 다음타자 이도윤의 바가지 안타로 유로결은 3루에 안착했다. 원아웃 1,3루 상황. 안타든 희생타든 한방이면 동점이었다. 나의 피는 끓고 가슴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리그 최고의 마무리투수 김택연의 폭투로 유로결은 홈을 밟았고 꿈에 그리던 동점이 되었다.
한화응원석에서는 환호성이 폭발하고 있었다. 나도 타인의 시선, 체면, 이성 따위는 개나 줘 버리고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 모두 도파민이 폭발하고 있었다. 두산의 투수가 바뀌고 당연히 역전할 줄 알았지만, 기어코 두산은 한화의 공격을 막아냈다.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더니, 조금 전 승리에 대한 환희는 온 데 간데 없어지고 끝내기 패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더 이상 한화에는 믿을만한 투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화투수 황준서는 첫 타자에게 볼넷을 주고 제구가 엄청나게 흔들렸다. 패색이 점점 짙어져 갔다.
두산팬들의 응원소리는 마치 내 귀와 가슴을 비수로 난도질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1루에는 리그 최고의 주력과 센스를 자랑하는 정수빈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끝내기 패배는 시간문제였다. 이때 한화는 투수교체를 단행한다. 내가 알기로는 이런 중차대한 상황에 믿고 내보낼 투수가 없었다. 그동안 그저 그런 선수였던 이상규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예상대로 두산 김재호의 보내기 번트로 정수빈은 2루에 안착했고 두산팬들의 함성소리는 경기장을 찢어놓았다. 반면 한화팬들의 침묵은 더욱 깊어져갔다.
아무도 예상 못한 이상규의 호투가 이어졌다. 끝내기 패배를 눈앞에 두고 이상규가 막아냈다. 한화팬들은 또다시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한화팬의 함성소리가 잠실야구장을 찢어놓았다.
최고의 분위기에서 시작된 한화의 10회 초 공격. 올해 모두 개인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장진혁이 타석에 섰다. 모든 한화팬들은 장진혁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장진혁의 배트는 매섭게 돌았고 빠른 발로 어느새 2루에 도착했다. 나는 이성을 또 잃고 미쳐 날 뛰기 시작했다. 다음 타자 잘 생긴 김태연이 결국 일을 냈다. 적시타를 친 것이다. 한화팬들의 환호는 하늘을 찢어버렸다.
2002년 월드컵 16강전에서 대한민국이 이탈리아를 상대를 안정환이 골든골을 넣은 이후 최고의 환희와 희열이 느껴졌다. 그렇게 7대 6 역전.
수 십 년 야구를 보면서 상상할 수 없었던 경기양상이었다. 작가기 이렇게 드리마대본을 쓰면, 욕먹을 정도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비현실 같은 현실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두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한화 투수 이상규의 퍼포먼스를 봤기 때문에, 그냥 믿었다. 상규는 한화팬들의 믿음에 최고의 보답을 했다. 삼진, 삼진, 파울플라이 아웃.
만화 같은 경기가 끝났다.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환희와 희열이 넘쳐났고, 내 얼굴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야구공 하나가 뭐라고 사람의 감정을 이렇게 들었다 놨다 하는지. 우리 가족이 평생 추억할 수 있는 인생레전드 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