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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오천 담보금 채우면

포동포동 살 찌운 칠면조 목치기

오늘은 장문의 켈리황의 톡이 올라왔다. "어제의 청산사태를 지켜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저를 통해 부자가 되고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몇몇 분들이 담보금의 부족으로 청산되는 걸 지켜보며, 마음이 너무나 아펐습니다. 그래서 밤새도록 생각을 해봤습니다. 내일까지 담보금을 추가로 넣으시는 금액의 10퍼센트를 제가 더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저만 믿고 따라오면 꽃길만 걷게 해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누가 가족도 아닌데 돈을 지원해 주겠는가. 투자의 책임은 본인 책임이데, 이렇게까지 다 퍼줄 수 있는가. 켈리황은 우리를 찐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켈리황 같은 사람 없다.

순식간에 켈리황을 찬양하는 수십 개의 톡이 함박눈처럼 쌓였다. 나의 마음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켈리황에 대한 믿음은 태산처럼 높아만 갔다.

나는 우선, 보험약관대출로 1000만 원을 마련하고 담보금으로 입금했다. 켈리황은 약속대로 100만 원의 지원금을 입금해 주었다. 그런데 입금방식이 조금 이상했다. 내 생각에는 개인은행계좌를 확인하고 입금해 줄거라 생각했다. 어떻게 된 건지, 거래소 담보금에 직접 입금이 되었다. 담보금에 직접 입금하기 위해서는 본인확인, 본인계좌확인 등의 과정을 거쳐야 만한다. 뭔가 찝찝했다. 하지만 지원금을 받은 사람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기에, 나도 입을 닫았다.

어릴 적부터 몸에 배어 있던 튀지 말고 중간만가자라는 무의식의 발현이었던 것 같다.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고 결국, 나도 불편해진다는 나만의 자의식에 묶여있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이 물음표를 마침표로 바꿔놓았다.

그렇게 다시 단톡방 분위기는 으쌰으싸하며, 다시 불타올랐다. 켈리황은 다시금 연승의 불을 지폈다. 비가 온 뒤 땅이 더 단단하게 굳 듯, 얼마 전 처절한 리딩 후, 연승은 켈리황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였다. 켈리황의 리딩만 따르면 200퍼센트 수익이라는 확신은 법칙이 되었다.

어느 날, 켈리황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더 많은 사람들을 더 빨리 부자로 만들어 주고 싶다. 나의 능력은 충분히 증명되었다. 최소 5000만 원을 담보금으로 준비한 사람들에게 개인리딩을 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단체리딩 수익도 어마어마한데, 개인리딩 수익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개인리딩 경험자들은 거의 돈복사 수준이라고 바람을 잡았다.

여러 명의 디테일한 바람잡이 덕분에(?) 사람들은 최소 담보금 5000만 원을 맞추기 위해 눈이 벌게졌다. 보험을 깨고, 수익률 높은 해외주식을 매도하고, 퇴직금을 미리 땡기고, 신용대출도 받고, 카드론도 받고, 주택담보대출도 받고, 지인한테 돈을 꾸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것 같았다. 눈이 먼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마지막 보루였던, 와이프의 신용대출을 풀로 받았다.

겨우겨우 5000만 원의 담보금을 채우고 개인리딩순서가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마치, 추수감사절 식탁에 오르기 위해 통통하게 살찌워진 칠면조의 목을 치는 날 같았다.

켈리황은 평소와 달리 밤 10시 리딩을 예고했다. 미국의 중요한 경제지표 발표가 있기에 큰 수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켈리황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사람들은 실현될 수밖에 없는 수익에 환호성을 질렀다.

미니나스닥 롱포지션 1 계약 진입.

나는 담보금에 여유가 있었기에 5 계약으로 진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수는 롱빔을 쏴 올렸다. 순식간에 나의 담보금은 홍수가 난 것처럼 흘러넘쳤다. 켈리황의 리딩 종료메시지가 올라오자마자, 켈리황을 찬양하는 수백 개의 톡이 나의 폰 화면을 수놓았다.

잠시 후, 통통하게 살 찌운 칠면조의 목을 치는 순간이 다가왔다. 켈리황의 2차 리딩 예고.

미니나스닥 롱포지션 1 계약 진입.

나는 담보금을 믿고 주저 없이 7 계약을 해버렸다.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오늘도 맛있는 먹이를 먹으러 가는 칠면조의 마음도 이랬을까. 상승하던 지수는 갑자기 하락빔을 쏘기 시작했다. 나의 브레이크 없는 욕심은 나를 낭떠러지로 밀어버렸다. 지하 1층, 지하 2층, 지하 3층... 강제청산.

그렇게 칠면조의 목은 잘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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