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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만 원의 희망이 죽음의 절망으로

돈 앞에서 무너지는 사랑

100여 명의 사람들은 어제 수익에 대한 기쁨과 오늘 수익에 대한 기대감으로 단톡방은 시끌시끌했다. 언제나 그렇듯, 켈리황의 해외선물리딩에 대한 톡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켈리황은 언제나 자기를 믿고 따르는 사람은 절대 버리지 않는다고, 무조건 부유한 삶을 살게 해 주겠다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견디며 하고 있는 해외선물리딩으로 자신의 수명이 단축되더라도 함께 하는 사람들 모두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톡을 거의 매일 올렸다.


그동안 증명된 수익과 연승 그리고 켈리황의 러블리한 멘트는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켈리황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우리는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며, 울고 웃었다.

켈리황은 리딩 관련 톡을 제외하고 거의 톡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100여 명의 사람들 중에서 적극적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대화가 이루어졌다. 자영업자, 군인, 간호사, 소프트웨어 개발자, 캐나다 유학생, 선생님, 일용직 노동자, 치과의사, IT기업 회사원 등 직업이 정말 다양했다. 직업과 성격은 가지각색이었지만, 거의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대화가 굉장히 긍정적이고 밝았다. 매일매일이 수익이었기에, 부정적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유머러스한 사람들의 대화로 방분위기는 언제나 시끌 따뜻했다.

100여 명의 사람들 중에 켈리황의 리딩으로 수익을 올리고 개인적인 리딩으로 수익을 올리는 우범진이라는 사람이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2000천만 원으로 시작한 시드는 어느새 1억을 돌파하고 2억을 코 앞에 두고 있었다. 항상 개인적인 수익인증을 올렸기에,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츤데레 성격의 소유자였던 우범진은 자신이 진입하는 방향과 지수를 항상 공개하며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도전을 독려했다. 강철 같은 대담함과 멘털로 우범진은 언제나 지수의 횡보와 급등락을 버티고 결국, 큰 계약을 통해 큰 수익으로 매조지었다.


우범진의 투자패턴을 보며, 넉넉한 담보금으로 버티면 결국 수익으로 연결된다는 믿음이 나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날도 켈리황의 리딩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사람들은 재미난 농담으로 톡을 주고받고 있었다. 농담이 시들해지면, 자신이 이 방에 들어온 사연들을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다양한 사연들이 있었지만,


며칠 전에 들어온 분의 사연에 코 끝이 찡했다. 자신은 오른팔이 없는 장애인인데, 변변한 기술도 없고 돈도 없어서 일용직의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일하는 날도 어쩌다가 있어서 살기가 폭폭 하다고 했다. 켈리황을 만나고 삶의 희망을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또 어떤 분은 치과의사인데, 무리한 대출로 병원을 개원을 한 바람에 병원운영이 너무나 힘들다고 토로하였다. 그분도 켈리황을 만나고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또 어떤 분은 직장 상사의 과도한 괴롭힘으로 탈모와 공황장애로 고생한다고 했다. 켈리황 덕분에 퇴사를 할 자신이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 주에 퇴사하고 퇴직금을 올인할 거라고 얘기했다. 그렇게 두런두런 톡을 주고받던 중에 켈리황의 리딩 메시지가 오전 10시에 올라왔다.

미니나스닥 롱 1 계약. 사람들은 재빨리 계약을 하고 자신의 계약금을 톡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계약금을 올리는 이유는 켈리황이 내역을 확인하고 한 사람도 낙오하지 않고 모두 수익을 올리게 해 주기 위한 용도였다. 그렇게 숨 죽이며 지수의 방향을 지켜보고 있었다.


켈리황의 예상과 달리 지수는 반대방향으로 움직였다. 평소에도 다반사로 있던 일이라서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수익으로 마무리될 것을 알기에. 그런데 오늘은 손실의 폭이 평소와는 달랐다. 켈리황은 롱 1 계약 추가를 지시했다. 담보금이 500만 원이었던 나는 아직까지는 버틸만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손실률은 커져만 갔다. 마이너스 100, 200, 300... 피가 마르는 느낌이었다.


누군가 단톡방에 손절을 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켈리황이 리딩하는 동안에는 톡이 금지되었기에, 그 메시지는 금방 삭제되었다. 그렇게 하락을 멈춘 지수는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아직 수익까지는 멀고 멀었지만, 희비가 교차했다. 그것도 잠시, 지수는 다시 하락으로 방향을 틀고 지하를 뚫고 내려갔다. 그 순간, 여러 명의 사람들이 담보금의 청산을 단톡방에 올렸다. 원래 켈리황이 리딩 하는 중에 톡은 금지사항이었으나, 여러 명이 한꺼번에 올린 톡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다. 그중에 충격적인 톡이 올라왔다.

"저는 팔이 없는 장애인입니다. 돈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기술도 없고 팔도 없어서 일용직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모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내와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삶은 녹록하지 않았고,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켈리황님을 만나서 희망이라는 것을 봤습니다. 며칠 전 몸이 불편한 아내와 점심으로 칼국수를 사 먹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외식이었습니다. 그날은 켈리황님의 리딩으로 7만 원을 번 날이었습니다. 하루종일 일을 해도 5만 원 벌기가 어려웠는데, 10분 만에 7만 원을 벌었습니다. 다시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팔 없는 몸으로 더 이상 육체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오늘 전 재산 300만 원을 청산당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한강에서 이번 생을 마감하려 합니다. 더 이상 무능력하고 짐이 되는 남편으로서 살지 않으려 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그 순간, 톡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보이는 것 같아다. 잠시 후, 사람들은 능력 있고 사랑 많은 켈리황이 잘 처리할 거라고 애써 위안 삼고 자신의 계좌에 집중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의 계좌가 어서 수익으로 전환되기 바라는 내가 미웠다.

그렇게 상승과 하락의 공방전은 장작 10시간 넘게 이어졌다. 점심과 저녁은 물론, 물 한잔 넘기기 어려웠다. 와이프는 걱정의 눈으로 바라봤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모든 사람의 계좌는 수익으로 전환이 되었고 리딩 종료 메시지가 올라왔다.

처절한 리딩 후, 켈리황에 대한 신뢰도는 더욱 높아졌다. 마치, 대규모 전투에서 승리한 개선장군 같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의 몸무게는 2kg가 빠져있었다.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은 해외선물투자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얼마나 잘 살아 보겠다고 이런 스트레스를 받아야 되는가!'

곧바로 '미래의 더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의 스트레스를 견뎌야 돼!!!!!'라는 내면의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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