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슬픔은 안녕하십니까? <인사이드 아웃>

<법무사지> 기고 칼럼

by 영화평론가 홍수정

영화 <타짜>에서 작업 타깃이 된 호구(권태원)는 다가오는 운명을 알지도 못한 채, 예림(김혜수)에게 으스대며 말한다. 도박은 다름 아닌 파도라고.

“올라갔으면 내려가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거야!”


비록 호구지만, 그의 말은 삶의 일면을 날카롭게 관통한다. 우리 삶의 많은 것들은 파도가 아니던가. 올라갔다가 어느새 내려오고, 다시 오르는 듯싶다가 추락하는. 이러한 것 중 하나로 '마음'이 있다. 행복한 듯싶다가도 어느새 아릿한 통증을 선사하며 우리를 괴롭히는 마음. 통제할 수 없는 맘은 영원한 난제다.


그래서 우리는 기쁜 순간을 만끽하면서도, 힘들고 아픈 순간에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고개를 떨구고 만다. 그저 이 순간이 얼른 지나가기를 바라며. 이 지면은 그러한 당신을 위하여 마련했다. 마음 속 파도가 당신을 저 아래로 끌고 내려가는 순간을 위하여. 당신이 어둠 속에서 홀로 견딜 때를 위하여. 이름하여 '12가지 마음에 건네는 영화 처방전'. 앞으로 일 년 동안 매달 한 편의 글로 찾아올 것이다. 마음이 고장 났을 때 복용할 수 있는 영화와 함께. 부디 효과가 있기를 바라며. 그런 의미에서 지면의 포문을 여는 작품으로 <인사이드 아웃>을 택한 것은 퍽 적절한 선택이 아닐까.


image.png <인사이드 아웃> 스틸컷


행복한 순간에 꼭 나타나는 슬픔이, 얘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

11살 소녀 '라일리'의 머릿속에는 다섯 개의 감정이 산다.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 중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는 것은 '기쁨이'다. 기쁨이는 라일리의 삶을 반짝이는 미소와 환희로 채우기 위해 늘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래서 기쁨이는 종종 슬픔이가 이해되지 않는다. 자기가 라일리의 기억을 행복으로 물들이는 순간에 슬그머니 나타나서 슬픈 추억으로 돌려놓으니까. 하… 얘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라일리에게는 슬픈 순간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며, 슬픔이의 존재는 빛을 발한다. 슬픔이는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인생의 상처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또 뜨겁게 눈물 흘리며 그 순간을 매듭짓는다. 우리는 이 과정을 '애도'라고 부른다. 라일리의 상상 속 친구 ‘빙봉’이 로켓을 잃어버려 울고 있을 때에도, 그를 위로하는 것은 기쁨이의 웃음이 아니라 슬픔이의 따스한 공감이다. 그들은 한바탕 울음 끝에 우뚝 일어나 다시 뚜벅뚜벅 걷는다. 슬픔 또한 인생의 중요한 일부임을 깨달은 기쁨이는 마침내 슬픔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기쁨과 슬픔, 그리고 여러 감정이 사이좋게 공존하는 세계. 라일리의 마음속 다채로운 빛깔을 스크린에 새긴 채 영화는 막을 내린다.


슬픔을 똑바로 마주하는 일,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행위

애니메이션의 명가, '픽사'의 15번째 장편 애니 <인사이드 아웃>이 개봉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어제 개봉한 것만 같은 싱그러움이 있다. 그것은 <인사이드 아웃>이 다루는 이야기가 오늘날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이 팍팍한 우리는 때로 슬픔이가 전하는 시그널을 감지하지만, 이것을 애써 무시하고 꾹꾹 누르며 치열한 삶의 전선으로 무표정하게 되돌아온다. 때로 슬픔은 거추장스럽다. 그것은 처리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마음의 떨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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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우리에게 <인사이드 아웃>이 묻는다. 당신의 슬픔은 안녕하냐고. 그것과 절연한 채 지내고 있지는 않느냐고. 실은 우리도 알고 있다. 인생의 어떤 순간들은 어쩔 수 없이 그저 슬퍼서, 그걸 정면으로 마주 보고 뜨겁게 껴안아 눈물로 적시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슬픔을 관통하는 유일한 방법은 필요한 만큼 슬퍼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피로하다는 핑계로 결정적 순간을 회피하는 우리는 점점 더 슬픔에 서툴러지는 것 같다. <인사이드 아웃>은 그런 우리를 환기한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나약하지 않다고.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행위는 자신의 슬픔을 똑바로 마주하는 일이라고 말이다.


<토이스토리> 시리즈, <월-E> 등을 제작한 픽사는 언제나 '이별과 성장'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왔다. <인사이드 아웃>은 라일리가 사랑해 마지 않던 유년기와 작별하며 인생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작품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슬픔이'다. 그것은 이별과 성장, 그 사이를 잇는 슬픔이 이다지도 반짝일 수 있다는 속삭임이 아닐까. 당연한 말에 새삼 눈물이 나는 것은 영화가 무척 다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마음속 어딘가에 갇힌 슬픔이를 풀어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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