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에 의미를 부여하기 싫다

by 영화평론가 홍수정

방송에서 심심찮게 그런 고백이 흘러나온다. 밥은 당신의 영혼을 위로하죠. 밥은 인생을 살아갈 힘이에요. 이 밥에는 추억과 사랑이 담겨있죠.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밥은 언제부터 이렇게 중요한 존재가 된 거지?


과거에 내게 밥은 그냥 밥이었던 것 같다. 나는 한끼의 식사가 주는 쾌감이나 위안을 따질 생각조차 못했다. 그래, 그냥 먹는거지 뭐. 짜릿한 쾌감이나 뭉클한 위안은 없었다. 밥은 그저 음악 사이의 침묵처럼, 시끄러운 하루 사이에 흐르는 잠시의 정적으로 존재했다. 혹은 그저 일을 하기 위하여 입에 밀어넣는 에너지원인 경우도 많았다. 너무 각박한가? 하지만 나는 그 상태가 좋았다. 무의미한 식사. 그냥 밥. 그것은 화려하지 않아도 평안했고, 나는 음식을 입에 넣는 순간마다 가슴이 설레지 않아도 되었다. 그 무의미함을 나는 나름대로 즐겼던 것 같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그런데 요즘의 밥은 너무 존재감이 커져버렸다. 먹방, 쿡방, 맛집 방송. 수많은 방송들이 "밥은 중요하다"고 외친다. 식사는 초라하고 소박한 하루의 끝에 내려진 선물이며, 지친 하루를 위로하는 안식처이고, 과거의 추억을 소환해주는 한 통의 편지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나의 경우에는 방송을 보며 그렇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저녁이 되면 나는 하루의 우울감을 손에 쥐고서 이것을 달래줄 식당을 찾아나섰다. 왜냐면 맛있는 밥이 하루의 위안이자 안식처이자 추억이 될 테니까.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입에 넣으며 "아아 이런게 인생이지." 그런 생각을 했었다. 얼마전까지.


근데 어느 순간 짜증이 치밀었다. 입 안의 쾌감이 내 인생을, 아니 그날의 기분을 구원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아닌 건 아닌거다. 쾌감은 그저 쾌감이며, 불행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그리고 어느새 커져버린 밥의 존재는 부담스러웠다. 맛있는 식사 좋지. 그런데 맛있는 식사는 '이벤트'다. 그것식사의 본질이 아니다. 식사의 본질은 '일상'이다. 입에 음식을 넣어서 씹고 넘기는, 매일 반복되는 하나의 루틴. 그것 외에 식사에 달리 무슨 의미가 필요할까.


요즘 시대는 밥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감성을 버무린다. 밥은 추억, 밥은 사랑, 밥은 안식입니다. 처음에 잠깐 재밌었던 그 놀이에 나는 이제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아니요, 밥은 그런게 아니에요. 밥은 그냥 밥이라고요. 그래서 나는 요즘 예전의 감각을 되찾으려고 노력중이다. 그저 흘러가듯 식사하던 감각 말이다. 의식하지 않고, 음미하지 않고 그저 먹고싶다. 일상 속에 녹아든 그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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