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홍수정 Aug 12. 2020

연인으로서의 박찬욱

※박찬욱 작품들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흔히 한국영화계를 이끄는 거장으로서 박찬욱을 봉준호, 홍상수 등과 함께 언급하지만, 적어도 '연인'을 그리는 방식에서 박찬욱은 다른 이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그가 그리는 사랑에는 동시대 감독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부드럽고 잔혹하며 파괴적인 에로스가 있는데, 이것은 그가 생각하는 사랑의 본질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박찬욱이 그리는 사랑의 원형적인 모습이 가장 잘 나타난 작품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군(임수정)은 스스로가 싸이보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밥을 먹는 대신 몸에 전기를 충전하려고 한다. 그녀는 건전지를 혀로 핥으며 몸에 전선을 꽂기 때문에 늘상 다치고 졸도한다. 그런 그녀를 변화시키는 것은 같은 정신병동의 일순(정지훈)이다. 여기서 영화의 가장 로맨틱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일순은 밥을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킬 수 있는 장치를 준비해 이것을 영군의 등에 성심성의껏 이식한다. 그는 영군의 세계로 들어와서 그녀의 논리에 맞춰 문제를 해결한 첫 번째 사람이다. 마지막에 영군의 입에 초콜렛을 넣게 하는 것도 "영군이는 사실 싸이보그구나. 얼마나 힘들었니."라고 말하는 간호사(최희진)의 애정어린 위로다. 그러니까 박찬욱에게 사랑이란, 그것이 아무리 이상하게 보인다 해도 상대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공유하는 행위다. 그런 태도가 이 작품의 제목인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 그대로 담겨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맹목적인 애정은 악인(惡人)과 만날 때 파국을 맞는다. <친절한 금자씨>(2005)에서 금자(이영애)는 유괴범인 백 선생(최민식)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의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대신 들어간다. 결국 금자는 자신을 좀 먹은 애정을 회수하기 위해 백 선생을 찾아간다.



박찬욱이 생각하는 연인의 모습은 <박쥐>(2009)에 이르러 더욱 선명해진다. 상현(송강호)은 좁은 집에서 남편, 시어머니와 살아가는 태주(김옥빈)의 세계를 목도한다. 태주도 신부이면서 흡혈귀가 돼 버린 상현의 세계와 마주한다. 이들은 서로에게 깊이 관여하고(상현이 태주의 남편을 죽임) 닮아가는 방식으로(태주도 흡혈귀가 됨) 서로의 세계를 공유한다. 물론 이 과정은 스토리 상 불가피한 선택으로 그려지지만, 중요한 것은 관계가 깊어질수록 서로를 흡입하고 침범하며 닮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다.  


박찬욱의 영화에서 유독 근친상간의 코드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에게 사랑이란 서로 같아지고 친연성을 확장하는 과정이며, 가족은 날 때부터 친연성을 공유하는 집단이다. '사랑, 같은 것, 가족'은 서로 등가 관계를 이루고 호환되며 영화의 공기속에 녹아든다. <올드보이>(2003)는 물론이고 <스토커>(2013)를 보아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인디아(미아 와시코브스카)와 삼촌 찰리(매튜 구드) 사이에는 성적인 긴장감이 감돈다. 찰리는 어린시절 인디아에게 쓰는 편지에서 '나와 닮은 너와 빨리 만나고 싶다'는 표현을 하는데, 인디아의 아버지는 이 편지를 그녀에게 전해주지 않는다. 박찬욱의 세계에서 '우린 서로 닮았다'는 열렬한 고백은 러브레터와 같기 때문이다.



흔히 <아가씨>(2016)의 절정은 숙희(김태리)가 히데코(김민희)를 데리고 도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박찬욱이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은 숙희가 히데코의 세계로 잠입해 들어가는 부분에 가깝다. 숙희는 하녀의 신분을 감수하고 괴로운 연극을 지속하며 히데코의 세계로 녹아들어간다.

박찬욱의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BBC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2018)에서 범죄조직의 일원인 여자가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쓴 편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Our body and blood will be mixed(우리의 몸과 피는 섞일거야). 이 파괴적이고 섬뜩한 선언이 박찬욱이 생각하는 연인, 그리고 사랑의 본질이다.


그러니까 박찬욱에게 사랑은 상대를 변화시키고 개선하며, 그를 구렁텅이에서 구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온 몸에 오물을 묻혀가며 함께 구렁텅이 안으로 기꺼이 들어가는 과정에 가깝다. 그리고 상대를 똑바로 마주보며 그의 세계 전체를 껴안는 것, 부서질 듯 껴안아 마침내 두 사람의 세계가 하나로 뒤엉키고 오로지 둘만이 이 세상의 유일한 동족이 되는 것. 그것이 박찬욱이 생각하는 연인의 모습이다. 그렇게 둘은 장난스런 여행을 떠날수도(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씁쓸한 죽음을 맞이할수도(박쥐) 혹은 파국이나(친절한 금자씨) 새로운 성장을(스토커) 맞을 수도 있다. 이들의 마지막이 매번 어디를 향해가는지는 관객인 우리도, 박찬욱 자신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꺼이 들어가고, 만나고, 온 몸으로 껴안는 성스러운 여정에 있다. 그것은 자신을 내던지며 모험하지 않고서는 통과할 수 없는 세계다. 그리고 나는 이 부서질 듯 파괴적이고 섹슈얼하며 애틋한 사랑을, 상대를 향해 힘껏 달려가는 무모한 연인들을 온 힘을 다해 껴안아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불쾌한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