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을은 한 뼘 맑아지고

by 영화평론가 홍수정

연초에 치는 시험을 준비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가을은 불안의 계절이다.

봄에는 야심 차게 수험 생활에 돌입하고, 여름에는 타는 더위에서 루틴을 지키느라 기진맥진이다. 그러다 8월 말쯤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길에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한 김 식은 바람이 어깨를 훅 스치고 지나갈 때 문득 깨닫는다. 더 이상 덥지가 네.


9월 학기가 시작되면, 수험 기간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열심히 했지만 시험에 붙을 정도로 충분가?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는 말도 불안하게 다가온다. 게 한 시절이 러간다.


어제는 창을 열고 책을 읽었다.

가을은 창을 열기 좋은 계절이다. 여름에 창을 열면 바람이 시원하지만 어느새 벌레 한 마리가 거실에 들어와 떡하니 버티고 앉아서 사람을 놀래키고, 겨울 바람은 너무 매서워서 창을 열기 쉽지가 않다.


책을 펼쳐두고 읽는 둥 마는 둥 있는데, 뒷베란다에서부터 내 방까지 뭉근하게 들어온 가을 바람에 놀라고 설레어서 창 쪽을 보았다. 물론 그곳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아직은 한여름의 뜨거운 기운이 살짝 묻은 시원 뜨듯한 온도. 낯선 공간에도 불쑥 들어오는 서글서글한 움직임. 세졌다 약해졌다 여러 강도를 오가는 부드러운 리듬. 가을의 기운과 기척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공기의 이동에 불과한 바람이 이렇게나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가을 공기가 천천히 움직이면 마음도 따라 천천히 흔들린다. 한 계절이 아름답게 감각된다는 것이 선물이다. 이제는 약간 빛바랜 슬픔과, 불안의 시간 끝에 당도한 편안함에 대해 생각했다.


서늘한 가을 바람이 전해주는 감동. 그 감정이 몇 해를 돌아 다시 나를 찾아왔다. 의 가을도 한 뼘 맑아졌음을 느낀다. 황홀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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