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풍문으로 듣는 <염력>에 대한 평들이 꽤 인색했기에 영화를 보기 전까지 약간은 고민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서 생각하건대 <염력>은 연상호의 수작이다. 그의 필모에서 최고작이라 단언할 순 없으나 꽤나 인상적인 작품이다. 동시에 <돼지의 왕>, <사이비> 등 그의 예전작들에 견주어 볼 때, <부산행>보다 훨씬 연상호다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연상호는 <부산행> 이후 예전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연상호는 늘 하고픈 이야기를 날 선 상태로 또박또박 전달하던 연출자였다. 그는 에둘러서 말하지 않는다. 이런 선상에서 장르적 쾌감을 내세우고 시사점은 스리슬쩍 감추었던 <부산행>은 퍽 예외적인 작품이다. <염력>은 용산참사를 스토리 전면에 차용하기도 하고, 석헌(류승룡)이 루미(심은경)를 구하는 장면은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무엇보다 "노예임을 인정하라"는 부분이나 공권력을 그리는 방식을 볼 때 이 영화 역시도 꽤나 직설적이다.
사실 연상호가 애니메이션을 연출하였을 때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그의 직설적인 화법과 연관되어 있다. 그는 '아주 한국적인 풍경'에서 '아주 한국적인 문제'들을 찾아내어 이를 돌직구로 말하길 좋아한다. 반면 애니메이션이은 아무리 사실적으로 그리더라도 시각적으로 축약되고 추상화되어 그 비현실성에서 오는 부드러움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연상호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그의 화법 특유의 날카로움, 그리고 애니메이션 장르 특유의 부드러움이 서로 부딪히며 매력적인 충돌을 만들어 내었다. <부산행>부터 실사 영화가 제작되면서 이런 모순적 충돌의 매력은 반감하였으나, 여전히 만화적 연출이 일정 부분 흥미롭게 남아있다.
나는 <염력> 역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면 더욱 흥미로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앞서 말했듯 현실적인 사회 문제와 비현실적 장르가 만났을 때 그 매력이 훨씬 배가되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의 코미디는 재미가 없다. 간혹 웃음이 터지는 부분이 있기는 하나 타율이 낮고, 터지는 부분조차도 너무 올드하다. 코미디가 실패한 부분은 민망함을 자아내며, 성공한 부분도 '이런 슬랩스틱은 언제 적 코미디인가'라는 생각에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이 썰렁한 유머들은 영화 전체와 맞물려 괴상한 매력을 발휘한다. 영화의 소재는 꽤나 민감하고, 이야기는 정치적이며, 화법은 직설적이고, 코미디는 자주 실패하고, 올드한 느낌의 익살스러운 음악이 깔리면서, 류승룡은 물건을 던지고 하늘을 나는 풍경. 이 괴상한 조합은 이상하게도 매력적이다. 물론 연상호 감독이 이런 식의 감동을 전달하려고 한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소재는 그리 예민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코미디도 성공하고, 초능력은 멋있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까. 그러나 종종 실패가 또다른 성공을 불러올 때도 있는 법. 준비된 코미디가 실패하고 썰렁한 농담으로 남을 때, 이것은 철거촌을 배경으로 한 서민 히어로의 서글픈 분투와 신기하게도 잘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관객으로서 나는 이 결과물이 좋았고, 또 즐겼다.
심은경은 <부산행>, <서울역>에 이어 <염력>에서도 연상호의 색깔을 제대로 표현한다. 그녀의 또박또박한 발음과 동그랗게 치켜뜬 눈은 연상호가 좋아하는 '비극의 직설적인 전달'을 표현하기에 제격이다. 연상호는 늘 '한국적인 비극'을 표정이나 정취보다는 대사로 전달하기를 좋아한다.
또한 연상호는 <사이비>, <부산행>, <서울역>에 이어 <염력>에서도 부녀관계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데, 그중에서도 '좌절된 부성애의 회복'의 코드를 좋아한다. 심은경의 앳되면서도 다부진 얼굴은 아버지에게 도전하는 딸을 연기하기에 적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모로 그녀는 연상호의 작품 세계를 표현하기에 제격인 배우다.
홍상무를 연기한 정유미 역시 전혀 새로운 악당의 모습을 강렬하게 선보인다. 그녀가 연기하는 악당은 해맑고 장난기 넘치되 잔인하며, 젊은 여성 특유의 제스처와 감성도 가지고 있는 소위 말하는 "똘끼"있는 캐릭터다. 특히 정유미는 성큼성큼 걷거나 소리를 크게 내지르는 식으로 홍상무를 표현하는데, 이런 행동들이 홍상무에게 새로운 결을 부여한다. 정유미가 얼마나 재능 있는 배우인지가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홍상무(정유미)가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 모습은 루미(심은경)가 소리를 지르는 모습과 오버랩되는데, 전자가 사람을 해치고 파괴하는 쪽으로 나아간다면 후자는 사람을 살리는 쪽으로 나아간다. 두 상반된 캐릭터가 비슷한 속성으로 표현되는 모습이 재미있다.)
또한 언급하고 싶은 것은 민 사장 역을 맡은 김민재인데, 그는 여태 한국 영화에서 주로 악당과 같은 비슷한 모습으로 출연했던 것 같다. 그러나 경찰서에서 방금 있었던 싸움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나는 그가 코미디 감각도 좋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코미디에 필요한 적절한 타이밍을 알고 있다. 앞으로 영화에서 김민재 배우의 다양한 모습을 더욱 보고 싶다. 그리고 변호사 역의 박정민은 이 영화에서 차분한 연기력을 보여준다. 그의 연기는 화려하지 않으나 디테일이 꽤나 섬세하다. 깨끗하면서도 정갈해서 연기의 폭이 넓은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것은 신석헌 역의 류승룡이다. 물론 영화에서 그의 연기는 나쁘지 않으나, 힘이 많이 들어가서 약간 과장되어 보이기도 하고 미묘하게 한 템포 느린 느낌이다(<내 아내의 모든 것> 때와 비교하면 약간 부자연스럽다). 이것은 배우가 아니라 연출의 문제일지도 모르므로 류승룡을 탓하기에 성급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염력>에서 그의 연기는 <7번 방의 선물>과 <내 아내의 모든 것>을 섞은 듯한 느낌인데 그때보다 못하다. 꽤 많이 익숙하기도 하다. 연기 변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이야기는 내키지 않으나 언급은 해야 할 것 같다. 연상호는 <부산행>에서 흥행 성공을 거둔 반면 <염력>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나) <부산행>만 못한 흥행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그 첫 번째 이유는 <신과 함께>다. 그렇다. 영화 흥행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대진표다. 흥행 성공을 바란다면 일단 개봉 앞뒤로 두 달 정도씩은 천만 영화가 없었야 한다. 한 번 천만 영화가 극장을 쓸고 지나가면 그 이후의 영화관 관객수는 오히려 준다는 말이 있다. 천만 영화를 보았다는 만족감 자체가 관객으로 하여금 한 동안 극장에 대한 관심을 끊게 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이 영화는 날이 예리하다. 일반적인 영화의 기준에서는 전혀, 그러나 천만 영화 기준에서는 날카롭다. 아직 국민들의 정서에서 미처 정리되지 않은 '용산 참사'를 정면에 내세우며, 용역이 철거민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너도 (죽은) 니 애미처럼 되고 싶냐?"라고 외치는 영화가 천만 영화가 될 수는 없다. 특히 클라이맥스에서 웅장한 음악이 깔리며, 경찰이 다스베이더처럼 등장하는 것을 보고 나는 '아, 연상호는 이 영화로 천만을 갈 생각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오히려 연상호는 이 기회에 하고싶었던 말을 시원하게 하려는 듯 보인다). 정치적인 영화가 천만을 간 예로는 <괴물>이 있다. <괴물>에서 미국 연구원이 한강에 독극물을 버리는 장면처럼, 정치적 장면이 초반부에 슬쩍 지나가면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염력>처럼 클라이맥스 내내 전시된다면 솔직히 천만은 요원하다(<괴물>이 흥행을 노려서 톤 다운했다는 의미는 당연히 아니다).
세 번째로, 이 영화를 '코미디'로 홍보한 것이 잘못이다. 내가 '안 웃긴 것'이 아니라 '홍보'가 문제라고 한 이유는, 아주 웃겼던들 흥행 대박은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초능력을 소재로 한 서민 히어로물 정도로 홍보하였다면 훨씬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기대를 갖고 본다면 이 영화는 즐길 만 하나, 코미디를 기대하고 본다면 이 영화는 지루하다. 후자의 경우는 빵 터지는 웃음을 기대했건만 별로 터지지도 않고, 터지는 경우도 올드하고, 예상 못한 용산참사 이야기에 어딘가 어둡고 날카로운 감각까지. "재미없고 불편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에서 '홍보'가 이렇게나 중요하다. 그 영화의 첫인상을 좌우해 버린다.
감히 말하건대, <염력>에 대한 지금의 관객평은 너무 가혹한 면이 있다. 그리고 나는 <염력>이 마음에 들었고 그 매력을 지지한다.(개인적으로 <부산행>보다 훨씬 좋았다). 한국 영화관에서 정치적 논란이 끝나지 않은 참사를 소재로 하면서, 익살스런 음악과 함께 쌍팔년도 개그가 출몰하고, 종종 웃기고 종종 썰렁하며, 느닷없이 부성애가 샘솟은 남자가 물건을 던지겠다고 고군분투하는 영화를 보는 것은 쉬운 경험이 아니다. 믿기 힘들겠지만 이것은 칭찬이다. 이 영화에는 초능력과 서투른 코미디, 그리고 작가주의까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한 아름이다. 그리고 연상호는 이것들을 끌어안고 유쾌하게 직진한다. 이 독특한 작품은 누군가에겐 실망감을, 누군가에겐 만족감을 선사할 것이다. 적어도 연상호의 애니메이션을 즐겼던 관객들은 후자일 것이다.
<염력>이 그 괴상한 매력을 알아보고 사랑해줄 관객들을 더욱 많이 만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