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은 개나줘

나의 기본적인 성향을 생각해보자면, 알고 있는 것들을 나발나발 쫑알쫑알 떠드는 것을 좋아하고, 앞사람이 누구든 몇 살이든 별로 쫄지 않고 대등하게 말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이건 이마빡에 써붙일 정도로 튀는 면은 아니지만 은근히 흔치 않은 특성이기에, '보기보다 재밌는 아이, 당돌한 애'라는 평을 잘 들었음. 그러니까 이건 나의 타고난 색깔이자 개성인 거지.


그런데 모든 일이 그렇듯 이것도 장단점이 있는지라, 누가 보기에는 매력 뿜뿜이지만 누가 보기에는 거슬렸을 것이다. 하지만 야생마 같던 20대에는 그저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다니면 그만이었고, 30대 초반에는 평론가로 등단하며 나의 이런 특성, 좋게 말하면 탈권위적이고 편하게 말하면 눈치 안 보고 나불대기 좋아하는 성품은 오히려 장점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30대의 미들에이지가 오며 내 안에서 유교걸 한 분이 쎄게 찾아오심.

비는 30대에 '써티 섹시(30 SEXY)'를 외쳤으나 나는 '써티 겸손'을 외쳤다. 내 안에는 겸손파가 득세하며 발랄 까불 나불이들을 화살촉 저리가라 하는 기세로 줘패고 다니기 시작했고, 덕분에 나불이들 입장에서 말 한마디 뻥긋 못하는 암흑의 시대가 찾아왔음.


이건 아마도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시험에 실패하고 늦은 나이에 본격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빠르고 유연하게 사회화되고 싶은 나의 열망이 만들어낸 엄격한 규율이 아니었나 싶다. '빨리 사회에 적응해야지' 하는 생각이 '조용히 살아라'는 약간은 왜곡된 규칙으로 드러났던 거지. 게다가 약간의 좌절감, 무기력증도 있었던 탓에 누가 내 색깔을 보고 왈가왈부하는 것조차 싫어, 모든 색깔을 숨기고 무색무취하게 있는 편을 택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그래야 되고, 그게 편하다고 생각해서 겸손단을 발동해 내 내면의 기강을 바짝 잡았다.


물론 사회생활이라는 게 어느 정도 자기감정을 숨기고 할 말을 가려하는 것이 핵심 역량이기는 하다. 하지만 사회화가 곧 겸손도 아니고, 겸손이 곧 무색무취도 아닌데, 그 고리들 사이를 투박하게 연결지은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게다가 내 딴에 유교걸이라 생각하고 했던 그 모든 것들이 오히려 나를, 입을 앙 다물고 구석에 조용히 있는 우울한 캐릭터로 보이게 만들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아 진정 이 길은 아니구나 라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리고 중요한 건, 나의 색깔을 좋아하지 않았을 사람들은 내가 그 색깔을 죽이든, 표백하든, 어차피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확고하게 핑크색을 싫어하는 사람은 인디핑크든 빛바랜 핑크든 물 빠진 핑크든 그런거 잘 모르겠고 그냥 다 싫음. 하지만 나의 색깔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게 그 차이는 크기 때문에, 이렇게 가다가는 나의 개성을 사랑해 준 사람들만 놓칠 뿐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겸손'이라고 제목에 썼지만, 사실은 내가 스스로에게 적용했던 왜곡된 규율을 개나 주자고 생각하고 있다. 무례하지 않은 선에서 색깔을 드러내길 두려워하지 말자는 생각. 나의 선명한 색깔을 보고 인상 찌푸리는 사람들을 볼 때에 마음이 잠시 따끔하겠지만 그건 그대로 감당할 나의 몫. 표백과 무지성 겸손이 답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내 안의 개성파들이여, 암흑의 시대는 갔습니다! 그런데 또 무색무취함이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도 크기 때문에 이런 마음가짐이 얼마나 갈지 약간 의문이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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