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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Sep 09. 2022

추석에는 가을 갬성나는 옛날 영화나 조지자

<추석 극장가...홍수정의 추천작은!>


이런 글을 올리고 싶었는데, 솔직히 볼 게 너무 없어서 못하겠다.

양심상 추천을 못하겠어. 영화값도 비싼 마당에 욕먹어가며 별로인 영화를 밀어줄 이유가 있나.  


대신 이번 추석에는 방구석에서 전 먹으면서 평소에 못 봤던 옛날 영화를 돌려보는 게 어떨까 함. 가을 갬성이 물씬 나는 영화들. 바닥에 누워서 창문으로 스멀스멀 들어오는 가을바람을 맞아가며. 나는 이런 게 그렇게 좋더라.


리스트 선정 기준은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서'임.

한 마디로 기준 없음. 작품성 안 따짐. 그냥 가을 하면 떠오르는 내 머릿속 클래식 클리셰.

근데 아무리 진부해도, 가을의 초입에는 또 이런 영화를 봐줘야 비로소 가을이 시작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거리를 배회하는 스파이, 말을 타고 황야를 달려가는 카우보이, 바람 부는 언덕에서 연인을 기다리는 여자. 뭐 그런 거 있잖아. 벌써 몽글몽글. (작품 이름 옆에 찾아볼 수 있는 OTT도 적어놨는데, 당연히 광고나 협찬 아님)


여튼 그래서 뭘 골랐냐면



1. 하울의 움직이는 섬(2004) - 넷플릭스, 시리즈온(개별 구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스틸컷


"아름답지 않다면 살 의미가 없어"

하울은 못 잃지.

사실 OST 때문에 골랐다. '인생의 회전목마'. 쓸쓸하면서도 풍성하고 운명적인 인생을 위한 전주곡. 러닝타임 내내 여러 버전으로 변주되는데, 원곡이 명곡이라 그런지 모든 버전이 다 좋다.


하울이 소피를 안고 바람을 가르며 날 때의 그 감성을 잊을 수가 없다. 자의식 강하고 아름다운 미남 하울을 기무라 타쿠야가 연기한 것조차 완벽. 내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촉촉한 여름이라면 <하울의 움직이는 섬>은 무르익은 가을이다.


근데 지금 다시 보니 이 영화 꽤 잔인한 면도 있네. 전쟁 이미지도 자주 반복되고, 하울이 다치는 장면도 그렇고. 억지로 만들어진 잔인함은 아니고, 자연 다큐처럼 야생의 모습을 숨기지 않아서 묻어나는 잔혹함. 지브리는 그 미량의 잔혹함과 우울함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 같기도 하다.


'인생의 회전목마' 괜찮은 연주 영상이 있어서 가져옴.



2. 모스트 원티드 맨(2014) - 시즌, 티빙, 왓챠, 시리즈온(개별 구매)

가을 하면 생각나는 스파이물.

피로한 얼굴로 회색 거리를 배회하는 필립 셰이모어 호프만. 이 세계에 지친, 그러나 맡은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남자. 어떻게 한 명의 배우가 이다지도 캐릭터를 완벽하게 체화할 수 있는지 경이로울 지경이다. 이 영화에서 필립 셰이모어 호프만의 존재감은 작품의 크기를 넘어선다.


스파이 출신의 비밀조직 수장인 군터 바흐만이 은밀히 수행하는 체포 작전에 관한 영화다. 원래 필립 셰이모어 호프만은 넉넉하고 단단하면서도, 예민하고 명민한 인상이 매력적인 배우다. 그런 매력이 무르익어 십분 발휘된 작품이 이 영화다. 거기다 레이첼 맥아담스, 윌렘 대포, <하우스 오브 카드> 시리즈의 히로인 리빈 라이트, <팬텀 스레드>의 빅키 크리엡스까지 반가운 얼굴을 보는 재미가 있다.



3. 순수의 시대(1994) - 왓챠, 시리즈온(개별 구매), 웨이브(개별 구매)


마틴 스콜세지가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영화 자체도 나쁘지 않지만, 고퀄의 시대물 보는 재미로 본다. 쌀쌀할 때쯤 한 번씩 봐줘야 함.

아니 솔직히 다니엘 데이 루이스, 미셸 파이퍼, 위노나 라이더가 리즈 시절에 저렇게 이쁘게 차려입고 1870년대 뉴욕 사교계를 연출한다는데 안 볼 도리가 있나?ㅋㅋ <반지의 제왕> 시리즈 같은 느낌. 상상만 하던걸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뉴욕 사교계 인기남 뉴랜드(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메이(위노나 라이더)와 약한 상태에서 엘렌(미셸 파이퍼)에 흔들리는 내용. 엘렌은 유럽 귀족과 이혼하고 집에 돌아온 상태. 이혼, 금지된 사랑 등 젊은 남녀들은 150년 전에도 비슷한 주제로 고민하고 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 다른 점 있다. 얘네는 드레스 입고 레몬티 마시면서 썸탐. 노란 장미 다발에 카드 끼워서 보내고. 참 저 때 살아도 재미났을 것 같애.



비슷한 결로 <센스 앤 센서빌리티>(1996)도 추천합니다. 넷플릭스, 웨이브(개별 구매), 티빙(개별 구매), 시리즈온(개별 구매)에서 볼 수 있다.

19세기 말 영국 자매와 에드워드(휴 그랜트), 브랜든(앨런 릭먼) 등의 로맨스 이야기.


추천 이유는, 케이트 윈슬렛이랑 휴 그랜트가 예쁘게 차려입고 나와서 차 마심ㅋㅋㅋ

한 마디로 흔치 않게 이쁘게 잘 연출된 시대물. 케이트 윈슬렛에게서 풍기는 귀부인의 느낌과, 휴 그랜트에서 묻어나는 귀족 한량의 냄새를 잊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 영화는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특히 앨런 릭먼이 남자답고 우직한 '브랜든 대령'을 맡아 열연하는데, 이걸 보면 <해리포터>의 스네이프가 "영원히(Always)"라는 명대사를 소화한 게 하루 이틀의 짬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비중은 적지만, 이제는 고인이 된 앨런 릭먼이 등장한 흔치 않은 멜로물이라 더 귀하다.



4. 가을의 전설(1995) -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개별 구매), 티빙(개별 구매), 시리즈온(개별 구매)

나올 게 나왔다.

리즈 시절의 브래드 피트가 말 타고 달리는 것 만으로 레전드가 되어 버린 영화. 영화 음악인 'The Ludlows'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가을 하면 가장 많이 생각나는 건 이 음악인 것 같다.


1913년 미국 몬태나 주를 배경으로 세 아들과 한 여성의 운명을 보여준다.

특히 단단하고 젠틀한 알프레드(에이단 퀸), 자유롭고 야생적인 트리스탄(브래드 피트), 막내 새뮤얼(헨리 토마스), 그리고 깐깐한 아버지 윌리엄(안소니 홉킨스), 화장기 하나 없이 맑고 건강한 얼굴의 수잔나(줄리아 오몬드)까지.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산자락 아래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청춘들의 모습은 무엇으로도 대체가 안 된다. 아래는 유튜브에서 찾은 The Ludlaws.



이왕 브래드 피트 얼굴 보는 김에 이것도 시도해보자.

조 블랙의 사랑(1998) - 넷플릭스, 웨이브, 시리즈온(개별 구매)


브래드 피트가 무려 '저승사자'로 등장.

인간계에서 활동하기 위해 잠시 인간의 몸을 빌렸다고 하는데, 저승사자도 이왕이면 잘생긴 몸이 좋나 봄.  <도깨비>의 저승이(이동욱)가 잘생겼다 하는데 원조는 이분이지.


여기서 브래드 피트는 냉철하지만 순수하고 귀여운 저승사자를 잘 연기한다. 피넛버터를 처음 맛보고 맘에 들어하는 부분 등 명장면도 꽤 있다.


게다가 그냥 잘생긴 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어딘가 서늘한 '신'의 모습을 훌륭히 소화한다. 브래드 피트는 늘 그런 매력이 있지. 잘생긴 걸로도 충분한 역할을 맡아서 연기까지 잘해버리는. 안소니 홉킨스와의 호흡도 좋다. 킬링타임으로 괜찮은 영화.

 


5. 미술관 옆 동물원(1998) - 왓챠, 티빙, 웨이브(개별 구매), 시리즈온(개별 구매)

결혼 비디오 촬영기사 춘희(심은하), 그리고 그의 집에서 사는 남자 철수(이성재). 어느 날 철수는 춘희가 혼자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투닥거리며 함께 시나리오를 써간다. 두 남녀의 사랑관을 엿볼 수 있는 작품.


심은하는 같은 해에 <8월의 크리스마스>, 그리고 이 작품에 연달아 출연하며 멜로의 여왕에 등극한다. 아닌 게 아니라 여기서 보글보글 볶은 머리를 질끈 묶고, 헐렁한 면티를 입은 심은하의 모습은 참 이쁘다. 시대를 대표하는 얼굴이라 할 만하다(연기는 그냥 그렇다).


오글거리는 설정 없이 담백하고 아름다운, 흔치 않은 멜로 영화.

그저 둘이 같이 수다 떨고, 과자 먹고, 시나리오 끄적이고 그게 다인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풍성하다.

지루하다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맘에 든다면 대체 불가의 매력을 느낄 것이다.




그 외에 <시월애>(2000)도 생각이 났는데 길게 쓰진 않았다. 젊은 이정재와 전지현이 등장해 바람 부는 강가에서 편지를 쓰는, 분위기로 조지는 영화. 참 저때는 저런 감성이 있었지. 내용은 뭐, 예상 가능한 내용.

또 <만추>(2011)나 <라라랜드>(2020)는 말 안 해도 너무 유명하니 생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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