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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ul 29. 2023

류승완의 퇴보, <밀수>

<밀수> 스틸컷

어찌 된 일인지 <밀수>에 이르러 류승완의 연출력은 이전보다 퇴보했다. 꽤 자주 쾌감을 터뜨리던 영화는 루즈해졌다. 만화를 연상시키는 화면 분할, 복고 스타일의 편집도 솔직히 지루하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으나, 의미 없는 장면이 늘었다. 다 같이 모여 한참 동안 하하 호호 웃는 뭐 그런 장면. '이들은 이렇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를 보여주는. 서사 전달의 기능밖에 없는 단조로운 연출. 혹시 이런 연출이 얼마나 지루한지를 풍자하려는 건가? 그렇다면 더 노골적이었어야 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여성 캐릭터가 주도하는 영화지만 여성 영화라고 보기는 민망하다. 그간 류승완 영화의 캐릭터를 기계적으로 성반 전한 버전에 가깝다. 초반 묘사되는 춘자(김혜수)와 진숙(염정아)의 우정은 80년대 남성 캐릭터를 성반전한 것으로 보인다. 여성 캐릭터가 갈등을 돌파할 때 앙큼한 미인계를 이용하는 컨셉은 또 얼마나 지루한가. 적어도 여자들의 우정을 그린다고 홍보하고 싶으면 그에 걸맞은 상상력 혹은 성의 표시는 보여주면 좋겠다.


대신 액션씬은 나쁘지 않다. 호텔에서의 싸움이나, 막판 수중 액션도 흥미롭다. 다만 갈등을 풀어나가는 해결 방식이 완벽하지 않은 전략과, 거기 어김없이 속아 넘어가는 인물들, 행운에 가까운 우연에 기대는 순간이 잦다. 이전에도 류승완 영화는 이런 부분에 꼼꼼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그런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 같다.

한때 흥미로운 영화들을 만들었으나 이제는 관습에 젖어버린 감독의 영화를 본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그럼에도 주말에 시원한 곳에서 앉아 2시간을 보내기에 적절한 영화인가를 묻는다면 그렇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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